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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이쌤 Sep 12. 2024

초등교사가 아니라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IT회사에서 일한 이야기

2024. 9.12.


2007년 2월 9일. (아마 맞을 것이다.)

나는 대기업 S의 IT회사에 하반기 공채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단 이 회사에 입사하려면 영어성적 및 기타 다른 스펙도 스펙이지만 적성검사에 합격해야만 했다.

열심히 준비해도 떨어지기도 하는 이상한 시험이었다.

서류전형 합격을 한 후(조건만 충족되면 합격), 먼저 이 회사에  합격한 IT 연수 동기들이 알려준 대로 서점에서 적성검사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약간 상식 및 아이큐테스트 같은 느낌도 받았다.

워낙 문제가 광범위하고 뭐가 나올지 몰라서 아주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적성검사에 합격하고 나서 도대체 왜 합격했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 문제를 풀 때 영역별로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나는 감독관이 넘기세요하고 지적할 때까지 아주 끝까지 풀 수 있는 만큼 풀고 넘겼었다. 그래서 몇 문제를 더 맞힐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는 여러 면접을 봤다.

토론면접, 프레젠테이션 면접, 영어면접, 임원면접 이렇게 4단계 정도였던 것 같다.

최근 IT기술 동향이나 전공지식을 좀 공부하고, 영어를 좀 듣고 말하기 연습을 해본 후 닥치는 대로 면접에 임했던 것 같다.

물론 취뽀까페를 통해 면접스터디도 열심히 참여해서 발표력을 키웠었다.


그렇게 합격하고 나서 몇 주간의 긴 사전연수를 받았다. Java관련 코딩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이 기억에 남고, 응원단 같은(?) 걸 하기 위해 합숙훈련 비슷한 걸 했던 기억도 있다.

단합 및 자부심을 키우기 위한 어떤 행사였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뭘 위한 행사였는지 모르겠다.


신입사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단합행사보다는 업무 적인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업무 지식 및 프로세스 등을 자세히 알려주고 전반적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그런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회사 부서배치를 받고 선배들의 실무교육도 한동안 받았다.

나는 대기업에서 주로 쓰는 ERP시스템의 한 모듈을 맡아 개선 운영을 하게 됐는데 ABAP이라는 언어로 프로그래밍도 해야 했고 해외법인 시스템 결산 및 새로 도입되는 ERP 시스템 때문에 새로운 부서에 또 적응도 해야 했다.


멘토제도도 있었으나 너무 뛰어난 동료나 선배들이 많아서인지 나는 괜히 기죽어있었다. 물론 업무 내용도 어려워서 잘 숙지하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있으면 자꾸 피하고만 싶어지는 것이었다.

계속 어려운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자 선배와 1층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었다.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 정말 되고 싶었어요."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교대 가."


그 선배는 3년 이상 일했던 사람이었는데 업무에 흥미가 떨어지는 시점이었고, 결국 내가 퇴사한 후 본인도 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에 들어가서 1년은 그냥 신나게 다녔다.

입사동기들은 비전공자들도 많아서 같이 업무를 어려워하고 이상한 사람들과 희한한 일들도 겪으며  회식도 하고 송년회도 준비하며 그냥 다녔다.

심지어 신입사원일 때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업무 출장도 갔었는데 어떻게 시스템을 세팅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생각나는 건 틈내서 시내투어 간 것, 어깨와 목이 아파 마사지를 받으러 간 것, 쉬는 시간에 테라스에서 회사 옆 초등학교 건물로 등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긴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업무의 어려움이 지속되자 급속도로 우울함이 밀려왔고 최후의 수단으로 몰래 수능 준비를 하기도 했다. 점수가 잘 나오면 교대에 입학하고 회사와 가족들에게 퇴사 통보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도 제대로 공부를 안 해본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수능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우리 교대가요 카페를 들락거리며 회사 다니면서 수능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저녁때마다 만나 공부를 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좀 더 버티다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사귀던 사람과 결혼도 해야 했다. 결혼 후에도 회사를 좀 더 다니긴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업무의 어려움으로 툭하면 울음이 터지는 우울함이 지속됐다.

퇴사에 찬성하거나 반대도 하지 않는 극 T 현실주의 남편옆에서 나는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부모님들 몰래 조용히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노량진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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