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가 될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인도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이야기
2024. 8.18.
우리 학교에서 나까지 6명이 인도 IT연수를 가는 멤버로 확정되었다.
그중에서 여학생은 나 한 명뿐이었다.
6명 중에 2명은 장학금을 받지는 못하지만 꼭 연수에 가고 싶어서 자비로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전공과목 공부를 잘 못하는 상태였고 자신감도 없어서 갈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꼭 필요한 노트북을 구입하는 것도 잘 몰라서 아빠와 아빠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 그 옛날 두껍고 별로 안 좋은 랩탑 중에 하나인 삼보 것을 샀었다. (그 직장동료가 비용도 좀 떼어먹은 듯!!!) 인도에서 공부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랩탑이 두껍다고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
그때 친하지는 않았어도 같이 가는 선배들에게 노트북 사는 것 등 필요한 물품을 살 때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
우리 학교와 천안에 있는 한 대학교가 인도에 함께 가기로 했다.
그쪽 학교에는 다행히 여학생이 4명이나 있었고 동거동락하며 공부하고 지지고 볶고 생활하고 여행을 하게 된다.
사전 연수로 천안에 있는 학교에 몇 주간 가서 영어공부, IT 기초 공부를 했었다.
터번을 쓰신 인도 교수님도 오셔서 무언가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무엇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04년 한여름, 우리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공항에서 인도 푸네라는 지역으로 비행기를 타고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가게 된다. 가는 길이 멀어서 중간에 말레이시아인지 싱가포르를 경유했었다.
스물 초 중 후반의 사람들이 모여 공부도 하긴 했지만(잘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 끌어주었다.)
젊었던 우리들은 약 2년간 친목도모와 인도 여행을 중점적으로 하며 살았다.
경기도 쪽에서도 한 팀, 대전의 한 대학에서도 한 팀이 IT연수를 하러 왔었고 여러 한국 사람들과의 교류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이 그냥 행복했다.
평범한 한국 학생으로서의 삶은 특별한 학생이 아니고서는 일탈을 할 수 없었기에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은 낯설고 설레는 특별한 무엇이었다.
사람들과 인도 남부, 북부, 함피, 고아 해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또 우리가 공부하러 간 인도 대학의 인도 친구들 도움도 많이 받았기에 우리는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인도 남부를 여행할 때는 케랄라 수로유람도 하고 끝이 안 보이는 고아해변을 거닐며 행복했다.
인도의 끝 깐야꾸마리를 갔을 때는 바다가 보이고 평범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몇 년 후 그곳에 쓰나미가 들이닥쳐서 마을이 초토화 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너무 안타깝고 계속 뉴스를 찾아보게 됐다.
인도 북부는 수도 델리부터 유명한 빨래터를 돌아봤던 일, 스무 시간 넘게 슬리핑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자이푸르, 우다이푸르 등 인도에서 약간 추운 지역을 두루 둘러봤었다. 특히 자이살메르 사막여행을 했던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던 모래언덕은 아주 일부였지만 잡초와 양 떼를 모는 사람들 사이로 낙타를 타고 지나서 사막 한복판에 불을 지피고 평야에서 잠을 청하던 것이 생각난다.
어떤 지역에서 가방이 털려서 인도 친구의 도움을 받았던 일,
여행 중간 지역에서 인도인 룸메이트의 친구가 가이드 비슷하게 도움을 줬었던 일.
인도인 룸메이트 중 한 명이 나중에 결혼을 해서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일.
함피라는 곳에 친해진 여자 친구들끼리 따로 여행을 갔었던 일도 생각난다.
그 밖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우리처럼 IT 연수를 하러 온 사람들을 보며 또다시 내 삶이 무한 확장되었다.
IT연수까지 온 이상 다른 꿈을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뭔가 전공을 꼭 살려야 할 것 같은 느낌.
1년 간의 인도 대학에서의 IT연수를 마치고, 운 좋게 벵갈루루로 지역을 옮겨 현지 기업에서 약 8개월 정도 인턴쉽을 한 후 한국 대학 졸업 전 한 학기를 남겨두고 2006년 여름 다시 복학을 하게 된다.
이미 졸업한 상태로 들어오게 된 사람들은 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래도 인도에서의 경력 때문에 모두가 취업을 했다.
나처럼 한 학기가 남은 사람들은 학기 수업을 들으며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 시험에 묻지마 지원했고 나를 포함해서 꽤 여러 명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대기업 S의 IT회사에 공채로 입사하게 되었다.
절대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던 시절.
내 마음속은 항상 불안감으로 차 있었다.
IT 전공자지만 프로그래밍은 물론 컴퓨터 전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큰 회사에 입사해 기분은 좋고 힘들게 살아온 시절에 대해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지만 내면에는 항상 떳떳하지 않은 마음이 존재했다.
IT 전공자라며 왜 그것밖에 못해?
도대체 뭘 배워온 거야?
초등교사에 대한 꿈은 저기 내 마음 한쪽에 그냥 작은 점처럼 존재했던 것 같다.
저녁시간,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이 학교 안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여전히 조금은 궁금한 상태.
그렇게 첫 번째 대학생활이 끝이 났고 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몇 년을 살게 된다.
하지만 회사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주는 막막함과 불안감이 또 몇 년간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