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뜬금없이 내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꼬질꼬질했다.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으니 탈수를 마치고 탁탁 펼쳐 널어놓지 않아서 쭈글쭈글한 상태로 말라버린 쉰내 나는 천 쪼가리 같았다. 특히나 입고 있던 티셔츠가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 주었다. 그 뒤로 집에서 입을 ‘괜찮은’ 티셔츠를 구입하는 일에 골몰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니 그저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입을 옷이니 마찰과 땀에 강하고 피부에도 거슬리지 않고 세탁을 자주 해도 되는 소재여야 했다. 그리고 저렴해야 했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가격이.
맨투맨 티셔츠는 의외로 홈웨어로 적합하지 않은데, 손목과 밑단에 있는 조리개(시보리)가 배겨서 거슬리기 때문이다. 후드 티셔츠는 누워 있을 때 불편하고 모자의 무게 때문에 옷이 뒤로 딸려가서 가끔 목 부분이 답답할 때가 있다. 기본 면 티셔츠가 가장 좋겠지만 소재가 너무 얇으면 몇 번만 빨아도 금방 낡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색이 좋겠다. 하나하나 내가 원하는 티셔츠에 대해서 따져보고 상상해 본다.
쇼핑을 자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브랜드가 아닌 캐주얼 브랜드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옷들을 세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저렴하게 파는 상품들이 이월상품이라 해도 기본 옷들은 작년이나 올 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난한 디자인, 적당한 소재,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구입할 땐 아울렛이나 백화점으로 간다. 그리고 매대 상품을 살펴본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먹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닐 때보다 그냥 지나치다가 눈에 띄는 옷을 샀을 때 만족감이 높은 적이 더 많았다. 집에서 입으려는 티셔츠도 외출한 김에, 근처에 백화점이 있길래, 괜히 한 번 아이쇼핑이라도 하고 싶어서 둘러보다 보니 적당한 것들을 찾게 된 경우이다. 그렇게 총 두 장을 샀는데, 같은 날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놓고 보니 하나는 와인색 두꺼운 줄무늬 티셔츠이고, 다른 하나는 남색 두꺼운 줄무늬 티셔츠여서 꼭 맞춰 산 것처럼 되었다. 가격도 한 장에 만원씩이었다.
그 이후로 두 장의 티셔츠를 돌려 입으며 침대라이프를 살고 있다. 여전히 무기력하고 끝내 머리 안 감기 기록을 갱신해내고야 마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 덜 초라하다. 집에서 입을 옷을 신경 써서 사본 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항상 입다가 버릴 옷, 어디 옷장에 처박혀 잊혀졌던 옷, 누가 줬는데 버리긴 애매한 옷, 오빠가 안 입는 박스 티셔츠 그런 것들이었다. 이제는 버릴 옷도 아니고 누가 준 것도 입던 것도 아닌, 집에서 입기 위해 구입한 옷을 입고 시간을 보낸다는 게 의외로 꽤 기분이 좋았다. 무기력도, 자괴감도, 피해의식도, 자책도, 아픔도 내가 어떻게 하기 힘든 것들이지만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그래도 내 힘으로 바꿨다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