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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Apr 18. 2018

꽃  1

컬러링북의 유행이 다 지나고 갑자기 컬러링북에 꽂혔던 적이 있다. 색연필 브랜드별로 비교하고 유화 색연필과 수채 색연필을 비교해가며 검색하고 어떤 색연필이 내가 좋아하는 질감을 내줄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런 노력 따위 아무 의미 없이 동네 문구점에서 72색 파버-카스텔 유화 색연필을 구입했다. 컬러링북은 서점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스토리 컬러링북이라는 마치 그림책을 한 권 완성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컬러링북을 구입하였다. 색칠해 본 바, 단순한 패턴 그림이나 비밀의 정원 같은 것보다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밀의 정원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몇 부분 색칠하다가 그간의 열정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흥미를 잃고 책꽂이에 꽂아두고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컬러링북과 색연필이 생각났다. 


책장의 가장 끝, 제일 구석에 꽂혀있는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꺼내고 침대에 걸터앉아 슥슥 칠하기 시작했다. 꽃과 우산, 바다 속 해초들 ... 뜬금없이 아주 신나는 음악을 듣고 싶었고, 오랜만에 퀸이 생각났다. 프레디 머큐리의 시원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퀸의 모든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유명한 몇 곡만 좋아하지만 그래도 나는 퀸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Love of my life이다. 설명한 것과 달리 퀸의 신나는 음악에 속하는 곡은 아닌데 정말 좋아한다.) 특유의 스타일도 좋고 전형적인 밴드 음악의 구성이 편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기타 선율과 보컬이 전율을 일으킨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혹은 약간 미치게 만들어주는 그런 음악이다. 아는 몇 곡을 재생 목록에 넣고 한동안 색을 칠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들었다. 




누워있기만 하지도 않았고, 괜히 우울한 것 같아 색칠도 하고 신나는 음악도 들었지만 그 날은 조금 쳐졌던 것 같다. 가게에 가서도 자주 멍을 때렸고 이유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혼 없이 일을 했고, 시간이 되어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좋아하는 꽃집이 보이는 길로 가고 싶어 상가 내부를 거쳐서 오는 길을 택했다. 일부러 불을 켜두고 퇴근한 건지 통유리로 된 가게 내부가 훤히 보였다. 수많은 드라이 플라워들이 천장에 걸려있고, 가장 안쪽의 꽃 냉장고에는 생명력이 넘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이 커다란 화병에 담겨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었던 건 새빨간 적색의 화려한 꽃과 연보라 빛의 빈티지한 장미였다. 그 꽃들을 보는 순간 집에 두고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쁜 화병에 꽂아 눈길 닿는 곳에 두고 보고 싶다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예쁜 화병과 그 곳에 담겨있는 풍성한 꽃들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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