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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Mar 13. 2018

오르락내리락 1

간절기 아우터를 찾아서



 오늘은 원래 주문했던 신발을 받으러 마트에 가기로 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 김에 오후에 수영을 하러 가볼까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하나도 하지 못했고 뜬금없이 구석에 뭉쳐있는 머리카락들에 꽂혀서 웬만해선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청소를 시작했다.


 보통은 청소기로 대충 휘적휘적 치우고 마는데, 오늘은 식탁 의자나 양말 바구니 같은 방해물까지 옆으로 밀어 놓고 침대 밑과 구석까지 아주 꼼꼼하게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기의 넙적한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청소기 머리를 분리한 뒤 청소기 호스 끝을 집어넣어 먼지를 빨아들이고, 창턱에 파인 홈 하나하나 먼지를 제거했다. 평소에는 절대 발휘하지 않는 깔끔함이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니 몸에 땀이 났고 씻고 싶었다. 머리를 안 감은지 4일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사실 어제부터 머리가 가려웠다. 그래서 옷을 훌떡훌떡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평소엔 누워서 생각만 하던 일을 너무 쉽게 해버렸다. 갑작스럽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좋아진 기분에 들떠서 옷장을 열어놓고 속옷만 입은 채 샤워 후의 촉촉함과 침대의 보송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또 갑자기 7년 전에 샀던 카메라가 떠올랐고, 그 카메라를 살 때 받았던 삼각대가 있다는 것도 기억났다. 나는 나의 코디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고 잘 찍어서 갖고 있던, 얼굴을 자르고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던 어떻게든 분출하고 싶었다. 예쁘게 꾸민 모습을 그냥 흘려보내긴 아까우니까. 그래서 마루의 빈 벽을 향해 카메라를 끼운 삼각대를 세우고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사진을 찍어보았다. 딱히 사진이 괜찮지 않았지만, 그냥 신나고 재미있었다.


 역시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을 할 땐 시간이 빨리 간다. 어느새 가게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사진 찍기 놀이를 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놓쳐서 가는 길에 뭔가 사가야지 했다. 하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음식 중에는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고민하다가 언제나 맛있는 걸 먹자는 생각에 동네 수제케이크 카페로 들어갔다. 이렇게 여유 부려도 되나 싶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케이크니까 신나게 먹자고 생각했다. 케이크 두 개를 주문했다.     


 케이크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오늘따라 레드벨벳 케이크는 퍽퍽했고, 베리베리라임 케이크는 심하게 시었다. 어느 정도 허기를 해결할 만큼만 먹고 얼른 가게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케이크로부터 시작된 기분의 하락세는 가게에서도 이어졌고, 치킨박스를 접는데 속으로부터 이유 없이 화딱지가 끓어올랐다. 무기력에서 의욕에서 짜증까지 오르락내리락. 한 번 수도꼭지를 돌리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 같았기에 더욱더 친절하고 기분 좋은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기분이 딱 환절기 날씨를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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