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니트와 코트를 입을 수 있어서.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겨울바람에 쉽게 따끔따끔 예민해 지는 피부를 가졌지만 그런 피부를 푸근한 니트로 덮을 수 있는 작은 위로가 있는 계절이다. 봄가을에는 얇은 니트를 입지만 한겨울이 될수록 두께도 두껍고 폭신폭신한 니트를 꺼내 입는다. 땡땡이 도트 무늬가 들어간 니트, 밑단 길이가 사선으로 잘린 니트, 꽈배기 모양이 짜여 진 니트, 전체적으로 길이가 긴 카키색 니트 등등. 어떤 옷과 입을지, 그날 날씨가 어떤지에 따라 골라잡는다.
니트는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둥글고 폭신폭신한 입체감도 느껴지고 포슬포슬한 털실로 만들어져서 따뜻하리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지금은 핸드메이드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짜임이 눈에 보이는 옷이라서 괜히 사랑스럽다. 누군가의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노력이 담겨있는 것 같다. 디자인이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 투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니트라는 옷이 가진 사소하면서도 묵직한 무게감을 좋아한다.
니트는 구입할 때 생각해봐야 할 게 많은 옷이다. 다른 옷들을 살 때 보통 고려하는 디자인과 사이즈, 가격 세 가지 요소 외에도 소재와 촉감, 관리법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 나는 디자인과 사이즈, 가격이 마음에 들면 옷 안쪽에 위치한 택을 읽어본다.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울(모)60% 이상이면 ‘합격!’을 외친다. 앙고라 소재는 다른 옷과 상성이 좋지 않다. 털빠짐이 심하기 때문에 함께 입은 코트나 티셔츠에 엄청나게 묻어난다. 또 제조 과정이 너무 잔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피하는 편이다. 웬만하면 울이나 알파카 같은 소재를 선택하는 편인데, 보통 울 함유량이 높으면 피부에 닿는 감각이 까슬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니트 안에 입을 얇은 티셔츠나 기본 티셔츠와 잘 맞을지도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얇은 소재로 된, 요즘에는 보통 발열내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내의는 니트의 까슬함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의나 티셔츠와의 조합도 생각해 봐야 한다.
소재에서 울 함유량을 확인하는 이유는 보온성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저렴하고 예뻐서 소재가 아크릴이지만 그냥 구입했던 니트가 있는데, 그 니트는 절대로 겨울에는 입을 수 없다. 보온성이 하나도 없고, 입고 있는 동안 구멍이 뚫린 성긴 직조물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가을에 입기에도 애매한 것이 피부에 닿는 부분은 땀이 차고 옷이 몸에 감기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을에서 겨울에 입을 옷이지만 입어보면 그 어떤 계절에도 입기 어중간한 옷이 되어버린 경험 이후로 니트는 가격에 상관없이 반드시 소재를 확인하고 구입을 결정하는 편이다.
코트도 기본 소재는 니트와 같아서 고려하는 건 비슷하다. 울 함유량이 높고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은 것, 그리고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가 너무 좁지 않고, 소매가 짧지 않은 디자인으로 고른다. 겨울에는 옷을 여러 겹 껴입기 때문에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이어지는 공간이 좁으면 팔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겨울까지 입을 생각이라면 길이는 최소한 무릎까지는 오는 것으로 한다. 다리 부분은 몸에 붙지 않고 펄럭거려서 보온성이 별로 없을 거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한 겹 덮어주는 게 생각보다 엄청난 보온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기장이 긴 옷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옷 관리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는 너무 자주 빨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빨아도 괜찮은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잘 구별하고 최대한 깨끗하게 입고 관리하는 것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다. 니트는 당연히 자주 빨지 않는 옷에 속하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절대로 맨살에 니트를 바로 입지 않아 땀이 묻지 않게 하고, 입고 나서 먼지를 털어주고 베란다에 널어 냄새를 빼는 과정을 거친 뒤에 다시 옷장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풀제거도 심한 부분만 조금씩 하고 전체적으로 생기는 보풀은 웬만하면 그냥 두는 편이다. 보풀제거를 너무 많이 하면 니트가 점점 얇아져서 니트 특유의 포근함과 소재의 힘이 사라진다.
오래 입은 니트는 왠지 모를 나긋나긋함이 느껴진다. 어색하게 빳빳하거나 부풀어 오른 곳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몸에 내려않는다. 이렇게 시간이 스미는 물건을 좋아한다. 차곡차곡 함께 보낸 겨울이 쌓여있는 니트와 코트를 볼 때면 이번 겨울도 잘 견딜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시간을 견딘다는 건 사실 별 노하우랄 게 없다. 잠깐 힘든 일을 잊어보려 딴 짓을 해도, 무언가에 집중하려 해도 추운 건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겨울을 보내는 법은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바라보며 견디는 것이다. 이런 때 괜히 ‘바보야, 춥지 않은 곳으로 떠날 수도 있잖아!’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더운 데에선 니트랑 코트를 입을 수가 없잖아!’라고.
나는 추위를 정말 싫어했다. 기본적으로 피부가 건조해서 겨울이면 더 가렵고 따가웠고, 추워서 덜덜 떨리는 감각을 힘들어 했다. 여러 겹 껴입는 요령이 없었을 땐 추울 수밖에 없었으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고, 겨울만의 풍경이나 분위기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니트를 갖게 되고, 마음에 드는 코트를 장만하고 난 뒤로 가끔씩 겨울을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 내가 겨울을 싫어했던 이유 중에 옷도 영향이 있었구나. 이때부터 패딩을 조금 멀리 했다. 한파에는 어쩔 수 없지만 영하 5도에서 10도 정도의 날씨까지는 좋아하는 니트와 코트를 입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도 좀 웃기지만 얇게 여러 겹 겹쳐 입는 방법을 고안하고 같은 두께라도 좀 더 보온성이 좋은 소재에 대해 고민했다.
그저 추운 게 싫고 겨울이 오는 걸 두려워했던 내가 가을부터 신상 니트, 스웨터들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멋진 코트, 가격도 적당한 코트를 찾기 위해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입어 보는 것도 좋았다. 꽃무늬 원피스에 포근한 스웨터를 덧입을 때 행복했고, 손등을 덮는 길이의 이불 같은 니트에 파묻히는 기분도 겨울에만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추운 건 싫지만 이젠 겨울을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 번 싫은 건 영원히 싫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도 물건도 감각도 시간도. 끝까지 싫을 순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다. 싫어하는 것을 아낌없이 바라보며 그 안에서 좋은 점을 발견할 생각은 없다. 단지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여유는 좀 가져볼까, 평가하고 결론짓는 타이밍을 조금 늦춰볼까 싶어졌다. 삶에서 몇 번 없을 우연과 인연에 대해 겨울과 겨울옷의 관계처럼 떠올려도 좋지 않을까. 두렵고 고통스러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는 포근한 니트와 멋진 코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