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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Mar 07. 2018

새해를 맞이하며 쓰는 글

공부하다가 새해가 되니 카톡에 새해인사들이 도착해서 흐름이 끊겼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멍하니 있다, 인터넷 창을 열었다. 창을 열고도 뭘 하면 좋을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결국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써보기로 한다. 2017년에는 중요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소중한 만남이 있었다. 하는 것 없이 힘들었고, 남는 것 없이 굴러갔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고 앞으로의 삶이 걱정된다.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고, 그저 견디면 뭔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도 헛되다고 생각한다.     


희망차게 혹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는데 그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긍정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과 긍정은 내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로-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도 있고, 노력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다. 산다는 게 누구에게나 똑같은 출발점이 주어지지 않고, 출발이 같다고 과정도 같을 수는 없으니 긍정과 희망으로 모든 게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그치만 세상은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라 말한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해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 하고 싶다는 것도 사실 딱히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고, 그냥 한동안 관심가지다가 어느새 잊혀지는 일일수도 있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 아니니까. 오늘 집에 오면서 내가 능력이 없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그건 지구력 혹은 꾸준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수학 빼고는 곧잘 했지만 곧잘하는 그 수준에서 나아지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뭘 배워도 오래가질 못했고, 정말 좋아하는 취미도 만들지를 못했다. 그랬던 것 같다, 계속. 그러니 지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흐지부지 될 수 있다. 공부도 그렇다. 꼼꼼하지 않고 지구력도 없어서 뭔가 시간을 들여도 그게 공부라고 하기엔 어중간한 게 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포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아무도 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라고. 누군가가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말할지라도 '그래? 넌 아닌데?'라고 되받아치고 싶은 고약한 마음이 생겨버렸다. 마음대로 날 평가하지 말라고, 나도 아직 나를 판단하지 못했다고. 바닥을 쳤구나 싶은 순간 또다른 바닥에 떨어진다. 답답하고 머리 아픈.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되고 싶은 직업은 매번 바뀌었기 때문에, 복잡하게 정하지 말고 그냥 살아가는 순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것 같다. 어쩜 그게 나를 망쳤던 게 아닐까 되짚어 본다. '행복'이란 게 얼마나 추상적인 기준인데, 그런 걸 꿈으로 가지다니. 그러니 지금껏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지 싶고. 돈이 없어도 과정이 즐거운 일을 하면 행복하겠지 했는데, 돈 없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구나 깨달았고, 그렇다고 돈 많이 벌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건 싫고, 이것저것 종합해보니 그냥 놀고먹는데 돈이 많았으면 좋겠구나 싶어졌다. 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최고이긴 하지. 내겐 그럴 가능성이 없는데 말이다. 


결론 없는 이야기들로 흘러간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란 게 논리 없고 타당하지 않고 근거 없고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변하고 있다. 순간적인 인상과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옳고 그름 보다는 내가 좋고 싫음이 더 중요해졌다. 내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말자고 새해 다짐을 적었을 정도다. 이 도망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멈추기도 힘들다는 건 안다. 나는 어느 순간 실패했고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를 수 있었던 곳에는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으리란 것을 안다. 나는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선택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능력이 부족했고 내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던 거다. 


어쩌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거였을 수도 있다. 내가 이만큼 밖에 안 되는데 어쩌겠어 하며 인정하고 항상 적당히 했으니 결과도 딱히 좋을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애써 괜찮은 척 해왔던 것도 있다. 아니, 사실은 적당히 한 적 없고,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게 쪽팔려서 쿨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땐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높은 수준을 기대했고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고 그래서 힘들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뭐든 잘하고 성격 좋고 활기찬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성격 좋고 활기찬'은 모르겠지만 뭔가를 잘하는 걸 바라기는 하는 것 같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금이 가능한 능력이면 더 좋겠다. 가치가 높아서 단가가 비싼 능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1년 반 전만 해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다. 나는 '의미'랄지 '가치'같은 것에 잘 설득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란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의미'가 뭐지? 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살아온 길에 걸맞게 취업하고 돈을 벌어야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답할 수 없음이 아직 답을 내지 못했다 라기 보단 나 자체가 별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딱히 틀린 결론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결론이 진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냥 나는 계속 훈련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틀리지 않아도 더 큰 상심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훈련 혹은 이 별것 없고 초라한 내가 진짜 내 모습일지라도 놀라지 않을 훈련, 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훈련 같은 것들. 그리고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더라도 결과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도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꽤 겪을 만큼 겪지 않았나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무엇을 슬퍼해야 하고 무엇에 아파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을 때도 있다. 내 판단을 믿기 힘들어진 이유도 있고,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진 경험들이 쌓여서 그렇기도 하다. 점점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화내지 않고 예민하게 굴지 않고 단지 적당히 살 수 있는 능력과 일과 돈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기대만큼 바라는 만큼 돌아왔으면 좋겠고 화내거나 예민하게 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족스러운 능력과 일과 돈을 바란다. 그런데 가장 포기하기 쉬운 것들 중에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화낼수록 외면당했고 예민하게 굴수록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바라고 기대하면 결과에 낙심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까. 

아무리 기대하지 않으려 해도 기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꾸 나를 포기하는 걸 마지막 순위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니컬한 척 세상 다 산 척 떠들어도 마음처럼 생각처럼 되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들은 결론 없이 빙빙 돌기만 하고, 그 이어지는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멈춰지진 않는다. 주절주절 적고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라도 잇고 또 잇고 이어가다 보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역시나 새해가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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