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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Oct 01. 2019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가 꽃을 좋아했던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새벽.

어제 점심시간 아빠와 주고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


엄마도 어느덧 갱년기에 접어들었다. 한여름에 산을 타도 땀 한 방울 안 나던 사람이 가을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체온 조절이 어려워진다는 것. 내가 아는 여성 갱년기의 전부였고, 엄마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갱년기라는 건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엄마 몸에서 하나 둘 오작동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나타난 건 '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는 소리에 둔감했던 것 같다. 엄마 딸인 나는 작은 소리에도 유난히 민감한데 말이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엄마가 듣고도 모른 체했다거나 흘려들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왜 그때의 나는 귀가 좋지 않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오랫동안 가스불 위에 올려둔 주전자가 빼액 울면서 끓는 물을 뱉어내듯, 엄마의 귀도 그렇게 되었다. 원인 모를 고름이 나오고 귀에서 자꾸 물이 흐른다고 한다. 항생제도 듣지 않는 바이러스라고 했다. 귀에서 물이 멎는 대로 고막을 제거해야 한댄다. 엄마는 이제 겨우 50살인데 말이다. 엄마의 자식들은 아직 사람 구실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인데 말이다.


새벽에 다시 상기시킨 아빠와의 통화는 괜스레 더 슬프게 다가온다. 엄마가 늙어간다는 게 슬프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있다, 어디 떨구어놔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늙고 힘없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엄마가 가엾다. 지금의 내 나이 무렵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을 쉬지 않고 일했다. IMF에 백수 된 후 이것저것 전부 말아먹고 소송까지 휘말린 남편 몫까지, 그리고 없는 형편에 꿈 많고 욕심 많은 자식들 때문에 한 평생 일만 했다. 이제 한숨 돌리고 여유라는 걸 누려보나 싶었더니 웬걸,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는 간호사다. 그것도 28년 차 베테랑. 매일 환자를 돌보는 엄마에게 자식의 잔병치레는 우리가 물고 빠는 알사탕보다 가벼운 일이었고, 죽음은 덤덤히 받아들이는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한없이 강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걸까.


이젠 엄마 본인이 환자가 되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자식은 비로소 엄마의 인생을 되짚어보게 된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쉬는 날엔 누워서 잠만 자고 텔레비전을 볼 때나 휴대폰으로 시시콜콜한 소설을 읽을 때만 실컷 웃었다. 엄마 인생에서 휴식과 미소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은 그 순간뿐이었나보다. 그동안 어떻게 버텨왔을까. 가여운 사람.


머지않아 청력의 절반 이상을, 어쩌면 대부분을 잃게 될 엄마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양말을 뒤집어 벗지 말라고 더 크게 소리치려나... 아니 소리치기 전에 그깟 양말쯤은 똑바로 벗는 습관을 들여야지.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게 엄마의 피땀으로 일군 것이라는 걸 깨달으니 일순간 공기가 무겁게 날 짓누른다. 카메라를 들고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사진을 남기는 내 취미도 과분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엄마 사진 한 장 찍어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아침 내가 찍은 꽃 사진을 열어보며 꽤나 오랫동안 슬프면서도 자조적인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꽃을 좋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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