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해졌다. 모레는 귀국 전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놓치면 못 들어가 보고 돌아가야 한다. 얼른 어디든 앉아서 예약부터 해야겠다 싶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등지고 돌아선 순간, 하늘에서 꽤 굵은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더니 금방 세찬 소나기로 변했다.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다니는 나이지만 그 날의 소나기는 너무 거셌다.
나는 빗 속을 방정맞게 달려 근처의 기념품 가게로 들어섰다. 비를 피하러 이 곳에 들어온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이 기념품을 구경하는 척하다가 비가 잦아드는 것 같으면 쏜살같이 나가버리니, 주인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나는 어디를 가나 사 오는 마그넷 몇 개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담겨있는 작은 스노우볼 하나를 계산한 후 그곳에서 비도 피하고, 주인의 눈치도 피할 수 있었다.
여행 중 만난 비는 당혹스럽지만, 지나고 보면 큰 행운이다. 더운 열기를 견디고 견디다 결국 울컥 모든 것을 쏟아낸 하늘은 유난히 더 아름답다. 참았던 감정을 토해낸 후처럼, 때론 낯선 곳에서 만난 비 갠 후의 하늘은 여행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에 잠기게 만든다.
바르셀로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당신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