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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Apr 11. 2020

힘들 때 쓰는 것도 나쁘지 않네

쓰다보니 고통이 덜해지더라.

책에서 그랬고 누가 그랬다. 힘들 땐 글을 써보라고. 어떤 말이든지 그게 말이 되는 안 되는 그냥 써보라고. 여태껏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힘듦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휩싸였을 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내 고통만이 있을 뿐.  시간이 흐르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땐 그렇게 힘들었지 하며 글을 쓸 순 있겠지만 당장 힘든 순간에 어떻게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게 된다. 어딘가에 감정을 배설을 해야 내가 살아질 수 있을 거 같으니깐 이렇게 쓰게 된다.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내 감정을 내 고통의 크기를 덜어줄 것만 같다.  글이. 아니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내가 살아지니까. 


주체하지 못할 감정이 어제에 이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그간 평화로운 일상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이상한 느낌. 언젠간 이 잔잔한 내 일상이 누군가로부터 빼앗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안을 떠안고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다시 빼앗을지 모르니 이번엔 제대로 지켜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런 평화롭고 잔잔한 일상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누구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일상이 내게도 당연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니까. 

굳이  내 삶을 비련 한 삶을 가진 여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 


잔잔한 일상에 외부로부터 던 저진 작은 돌멩이가 고통의 파장을 이렇게 크게 불러올 줄 몰랐다. 그 외부가 특히 '가족'인 경우에는 그 파장이 너무도 크다.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다. 왜 '가족'을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았느냐고. 연못 같던 잔잔함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무섭고 두려운 바다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크기로 인해 멘탈은 삽시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상처를 주는 말의 칼 끝은 서로를 향했고 그 칼날에 베이지 않기 위해 우린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 내가 더 많이 상처 받았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상처 주지 마. 그리고 이젠 나보다 네가 더 아프고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 내가 상처 받았던 만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 상처가 더 컸다고 그땐 너보다 내가 더 아프고 힘들었으니 이젠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마음을 몽땅 있는 그대로 뱉어 버렸다. 더 아프고 잔인하게.



상처의 칼날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를 향했다. 내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온 결국 경직되어 버렸다. 그러다 이 고통을 멈추고 싶기라도 한 듯 가슴이 조여왔다. 너를 더 아프게 한다는 것이 결국 나를 더 아프게 해 버린 걸까. 


살아있는 내 모든 감각들이 고통에 반응했다.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지나온 고통의 순간과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의 고통까지 모조리 끌어 와 버렸다.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의 것 까지 지금 다 감당해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고통을 쓸어 담았다. 또다시 고통을 재생시키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 


감정에 지배당하는 비이성적인 순간에 이성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생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따위는 당장에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만이 떠오를 뿐이다. 


나를 지켜야 하니까 나도 공격적으로 변한다. 감정에 지배당한 이성은 힘을 쓸 여유조차 없다. 그저 감정이 시키는 데로 이끌려 갈 뿐. 


모든 감정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쌓이고 쌓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힘을 갖은 폭탄으로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그 시한 폭한이 결국 터져버렸다. 


그간 잘 해왔다고 생각했던 마음 챙김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감정이 또다시 나를 지배하려 들까 불안하고 두렵다. 


이렇게라도 쓰면 나아지려나.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어라 떠들어도 이 하얀 백지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어떤 곡해된 의미를 부여하지도 나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감정을 내뱉어도 괜찮으니 마음대로 하라 한다. 시작도 끝맺음도 모두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 그저 묵묵히 내 곁을 지키고 있을 뿐.


이 하얀 백지가 사람보다 낫구나.

이 하얀 백지가 가족보다 낫구나.

적어도 내게 이 순간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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