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않고
나의 아저씨 OST <어른>중에서
시린 겨울을 지나 봄이 막 시작되려던 2018년의 어느 날. 나의 눈물샘을 마르지 않게 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이제 막 청춘의 봄에 들어선 지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고 가냘픈 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다.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친 말투와 서늘한 눈빛을 갖고 있는 지안. 그녀는 어릴 적 부모님과 이별하고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단둘이 살았다. 부모님은 사채 빚을 남기고 떠나버렸고 그 빚은 고스란히 지안의 몫이 되어버렸다.
지안이 학생이었던 어느 날.
사채업자가 집으로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지안이 보는 앞에서 할머니를 폭행한다. 이에 분노한 지안은 사채업자를 칼로 찌른다. 학생이라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호적에 빨간 줄은 그어지지 않았다. 지안의 사정을 안 몇몇의 사람들이 그녀와 할머니를 도왔다. 하지만 그들은 지안의 불행한 가정사를 이용해 자신들의 선량함을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했을 뿐 지안의 마음 사정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 뒤로 지안은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얼음처럼 냉랭하게 세상을 대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겨울이라는 계절만이 있었던 것처럼. 차디찬 외로움이 자신에겐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이 모든 사실을 숨긴 채 어떤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업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제안이 들어온다. 자신을 계약직으로 뽑아준 같은 부서의 부장 박동훈에게 접근해 전화를 도청하고 뒷조사를 하라는 제안이었다.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살아가던 지안은 그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동훈을 알아가면 갈수록 얼음장 같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유대감을 느낀다. 인류는 무리를 지어 살면서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왔다. 사회적 유대감을 갈망하게 만드는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다. 인간이 관계망에서 벗어나게 되면 '고립감'을 느낀다. 이 고립감은 외로움을 함께 유발한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외로움은 인간 사고능력에도 손상을 미친다.
이러한 외로움은 세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비롯된다.
1. 사회적 단절에 대한 취약성 수준
2. 고립된 느낌과 관련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3. 다른 사람에 대한 심적 표상(사물이나 일의 상태에 대한 지식이 마음에 저장되는 방식)과 기대, 그리고 추리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p.25
인간은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난다. 신체적 요건, 기초 지능, 기본 성향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욕구의 수준도 물려받는다. 물론 유전적인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환경의 후천적인 요인들 즉, 어떤 경험을 쌓느냐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사회적 유대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라는 감정이 일어난다. 이는 개인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강도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립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사고의 능력이 손상된다. 관계를 맺는 사회적 능력도 떨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체기능도 저하되어 이유를 알 수 없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몸은 수면과 같은 자연치유적인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삶의 질을 저하 시키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삶은 어느새 주체할 수 없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지각을 통해 경험을 구체화시킨다. 구체화된 경험은 자아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겪는 경험은 대게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한 개인이 사회와 세상을 인식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지안은 세상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6살에 부모와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부모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했고 정서적으로 지지 받지도 못했다. 지각이 한창 형성될 시기 지안은 혼자 자신을 지켜야 했고 세상을 견뎌야 했다. 그녀에게 세상과 삶에 대해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였고 외로웠다.
자신과 할머니를 괴롭히는 사채업자를 죽이게 되면서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지안이 겪었던 상처 많은 경험들은 마음 깊숙이 '외로움'을 새겨 놓았다. 세상에 대한 기대는 져버린 지 오래였고 타인과 관계 맺는 것도 거부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나서도 자신과 계속 잘 지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거리를 뒀다. 지안이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고 누군가 다가오려 하면 한발 물러섰다.
내가 어떤 앤지 알고도 나랑 친할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지안의 대사
유대감이 상실되었을 때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반대로 생각하면 외로움을 느끼면 유대감이 필요하단 신호다. 외로움은 인간을 독립적으로 설 수 있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타인과 협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타인과의 간극을 끊임없이 메우려 하면서 인간은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운다. 타인과 나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조절이 중요하다.
우리의 외로움 경험에서 핵심을 이루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균형잡기와 조율은 우리 몸 안의 모든 세포에 반영되어 있다. 모든 세포가 우리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건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맺기 위해서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자각하는 인지 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지안처럼 어릴 적 부모와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주변 환경들 마저 부정적 피드백만을 주는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인지능력이 향상되기 어렵다.
가소성이 있는 인간의 뇌는 후천적인 영향, 즉 건강한 관계를 새로 맺음으로써 긍정적인 인지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갖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기 조절 능력도 향상된다. 대신 이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양보다 질적인 면이 훨씬 중요하다.
동훈은 지안의 개인사와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단 걸 알게 된 후 그녀를 챙긴다. 동훈의 동네 사람들 역시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걱정한다. 어둠이 깔린 골목길을 함께 걸어 주었고, 오갈 곳 없었던 그녀에게 자신의 방 한편을 내어주었다. 지안의 하나뿐인 혈육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함께 해주었다. 함께 울고, 웃고, 떠들어 주었다. 동훈과 동네 사람들은 지안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로 그녀를 단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때 지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지 오직 그 마음만을 헤아리고 감싸 안았다.
평생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지안의 인생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웃음기 없던 지안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 그녀의 앞날에도 희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화에 지안이 편안함에 이르렀음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나의 과거가 떠오르면서 누군가 자신의 편에 서준 다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외로움은 당신이 필요하단 증거다. 세상은 우리가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
우리는 무력하게 태어났다. 우리는 의식이 완전히 생기자마자 외로움을 발견한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무엇이든 알려면, 심지어 우리 자신을 알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영국의 사상가-C.S. 루이스 돈 전>
# 참고도서, 사진출처: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