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부터 창의성을 위해 사소하지만 들이기 어려운 습관 하나를 들여보자 결심했어요.
이 습관은 창의력에 관한 김경일 교수님의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라는 책 때문에 시작되었어요. 어떤 습관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책의 제목의 핵심! '창의성'에 대해 알아보고 가도록 할게요.
책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에서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창의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 주는 상황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만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주는 상황에만 들어간다고 창의성이 뚝딱 만들어질까요? 김경일 교수는 창의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창의적인 생각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잇는 '연결성'에서 나온다고 말씀드렸죠?
연결성은 경험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생각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창의적인 상황과 그 안으로 들어간 나의 세계가 연결되어야 해요. 연결성을 통해 확장된 생각과 또 다른 세계가 계속 연결이 되면서 세계관을 점점 확장시켜나가는 거예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 숨어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이해하고 발견할 때 창의성이 생겨나는 거죠.
단순히 창의적인 사람을 본받자는 수동적인 생각보다는 내 인생에서 창의적인 순간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서로 다른 경험이 이어질 때 창의성이 생겨난다고 해요. 그렇다면 경험을 많이 해야 하겠죠? 그런데 우리에게는 경험을 많이 할 시간도 돈도 여유도 그리 넉넉하지 못해요. (어쩌면 하기 싫어서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는 걸지도) 어떻게 해야 시간도 돈도 아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네 맞아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독서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어요. 인지심리학자들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의 축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의 재구성'입니다. '지식의 재구성'이란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널려있는 개별적인 지식을 하나의 의미 있는 덩어리로 묶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책 중간중간 포진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묶는 '은유'라는 접착제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 은유가 존재하는 다른 활동들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에서 (밀리의 서재 e북 p.174)
위대하고 창의적인 발견들은 겉으로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을 이어 붙여 보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유추 analog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문제와 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단서 사이에 표면적인 유사성이 떨어질수록, 그러니까 해당하는 영역이 다를수록 기존 지식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잘 연결시키는 능력이 강해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가져와 잇는다는 것은 좌뇌는 우뇌든 뇌의 연결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에서 (밀리의 서재 e북 p.161)
이 '떨어져 있는 것 이어 붙이기'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메타포 metaphor, 은유입니다. 은유가 뭘까요? 은유란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중략) 은유적 표현을 듣고 이해하는 순간 세 개념 사이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아직 낯선 표현이라 반듯한 아스팔트 길은 아니어도 최소한 따라 걸을 수 있는 오솔길 정도는 생깁니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에서 (밀리의 서재 e북 p.163~164)
메타포하면 무엇이 떠오르죠? 네 맞아요! 은유하면 바로 '시' 아니겠어요?! 김경일 교수는 시야말로 깊은 생각과 영감이 가득한 문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시야 말로 메타포 덩어리라며. 당장에 은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은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상에 발을 담가야겠죠!
그래서! 저는 올해 들이고 싶은 습관 하나로 시를 읽기로 했답니다. 읽기만 하는 것보다 것보다 필사까지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읽고 따라 쓰는 것을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너무 낯선 시인보다 익숙한 시인의 시가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에게 '풀꽃'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선택했어요.
제가 선택한 첫 번째 시집은 나태주 시인의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이라는 필사 시집이에요. 2020년 나태주 시인 등단 5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중 필사하기 좋은 시를 뽑은 첫 필사 시집이라고 하네요.
22년 1월 6일부터 그의 시를 읽으며 필사를 시작했어요. 시를 필사한 후 시를 여러 번 곱씹어 읽고 눈을 감고 시 속 세상을 떠올렸지요. 시인이 전하는 마음을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시인과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보면 무의식 깊숙이 숨겨둔 감정이나 지나온 삶의 어떤 순간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때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등 여러 생각이 시와 연결된답니다. 시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연결되면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더라구요. 어쩌면 이제 막 시를 읽기 시작한 제게 있어서 시는 '나'와 '너'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새로운 경험인 것 같단 생각도 들었어요.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매일 밤 같은 시간 총 37번 시를 읽고 썼어요. 사실 중간에 두 번은 외박하느라 빼먹었지만요. 필사가 끝나면 잠시 눈을 감고 사색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시인의 마음에 제 마음을 더해 시인에게 답장을 하거나 또는 그때마다 떠오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글을 써요. 그 다음 제 인스타에인증 사진을 올린답니다.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시만 나오면 꾸벅꾸벅 졸기만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때 보다 어른이 된 지금 그래도 머리 큰 어른으로 세상 경험을 조금 해봤다고 은유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아서 시를 읽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게다가 창의성까지 발견할 수 있으니. 시가 이렇게 좋은 걸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 노트에만 쓰고 인스타에만 남겨 두기엔 뭔가 아까워서 이렇게 브런치에 제가 그동안 읽고 받아 적은 시와 제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려볼까 해요.
22년 2월 12일 토요일에는 나태주 시인의 <오직 사무치는 마음 하나로>라는 시를 읽었어요.
오늘은 시를 읽는데 불현듯 나의 소녀 시절은 어땠지? 행복했었나? 그때 나는 많이 웃었나? 그때 어떤 꿈을 갖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제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어요. 네 삶은 어때? 너 지금 어때? 라고 말이죠. 어느 땐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 가슴 아플 때가 있어요.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 때문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감정들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사실 가끔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내 곁에서만 흩날리는 향기가 있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내게만 손 내미는 세상이 있었다
세상과 나는
우주에서 둘도 없는 동무였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드넓은 초원 위를 달리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뒤를 따랐고
꽃들은 손뼉 치며 장단을 맞췄다
우리의 노래는 멀리멀리
우주 밖으로 뻗어 나갔다
오늘 나는
내가 소녀였을 때 불렀던 노래를
오래된 서랍 안에서
다시 꺼내 불렀다.
@write-napul
창의성이 없어서 고민이세요? 그럼 여러분들도 시를 읽어보세요. 시인의 마음에 잠시 발을 담가보세요. 시인의 세상이 전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거예요. 혹시 또 알아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연결되어 또 다른 우주가 펼쳐질지 말예요. 이건 제 망상인가 ㅎㅎㅎ
그럼 모두들 평안한 밤 보내세요.
# 참고도서 <창의성이 없는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 입니다> 나태주 시인<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필사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