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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Dec 20. 2020

나만 아는 어떤 마음이야기

세번째. 다시 그곳으로 

나는 흐트러진 감정들을 추스르고 짐을 쌌다. 


'바지는 세 개 정도만 가져가고 얇은 카디건이랑 경량 패딩조끼도 좀 챙겨야겠다. 여기는 쌀쌀한데 11월 제주 날씨는 어떻지?' 


일기예보를 불신하는 나는 제주에 머물고 있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거기 날씨 어때? 외투를 좀 두꺼운 걸 챙겨가야 할까?' 


'여기 남쪽이라 그런가 아직까지 춥지는 않아.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부네. 알지? 제주 바닷바람 말이야. 밤에는 추울지 모르니까 두꺼운 외투 하나 챙겨 와' 


동생말에 10여년 넘게 입고 있는 검은색 오리털 패딩점퍼를 꺼냈다. 비싼 브랜드라 그런지 오리털이 많이 빠지지 않고 패딩의 폼을 잘 유지해주고 있었다. 


'역시 비싼게 좋긴 하네' 


겨울옷이라 부피가 상당해 캐리어의 절반을 차지했다. 부피를 좀 줄일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던 나는 며칠 전 겨울 이불을 담아 두었던 압축팩을 꺼내들었다. 압축팩에 패딩을 넣고 청소기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캐리어가 한결 여유로워졌다. 


짐 싸기는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이젠 짐을 싸는데도 달인이 된 것 같다. 


'챙길 건 다 챙긴 듯싶고. 뭐 빠진 건 없겠지, 아 맞다 마스크도 챙겨가야지' 


티비장 서랍에 있는 마스크를 꺼내러 갔다. 서랍을 열고 마스크를 집으려는데  옆에 있는 앨범이 눈에 띄었다. 몇 장 남지 않은 나의 제주이야기가 담긴 앨범이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콤플렉스 덩어리인 나를 보는 게 싫어서였다. 내가 봐도 내가 미웠다.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슬픔의 그림자가 늘 따라다니며 이게 네 인생이라고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풍경을 찍었다. 나는 그저 풍경 속 소품일 뿐이었다.


인생의 절망속을 헤매이고 있는 그는 어린내게 늘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왜 그모양이니 에휴' 


이 말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정의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에휴' 라는 함축적인 탄식 한마다가 내 모든걸 대변하는듯. 그래서 쓸모없는. 그런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었다. 


서랍장 구석에 처박아둔 앨범을 꺼내 들었다. 오랜 시간 들춰보지 않은 탓인지 사진이 끼워진 비닐들이 서로 들러붙어 앨범을 넘길 때마다 쪄억 쪄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진 속에는 짠내 가득한  제주의 바닷바람과 쨍한 햇살에 검게 그을린 또래에 비해 한참이나 작고 마른 레고 머리를 한 10살 꼬마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똑같이 레고머리를 한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에 장난기 가득한 그러나 뭔지 모르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8살 꼬마 남자아이가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사진 속 두 꼬마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앨범을 치켜들어 무릎에 세우고 두 꼬마 옆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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