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17. 마흔 두번째 시. 나태주 시인<초저녁의 시>
시인과 이야기를 나눌 밤이 오늘도 여지없이 찾아왔어요. 나태주 시인과 벌써 마흔두 번째 밤을 맞이하고 있다니. 이 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 이면 옷고름 매만지며 사랑하는 님을 맞이할 준비를 저도 모르게 하고 있네요.
(그동안 노트에 적고 인스타에만 올리다가 얼마전부터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어요. 지난 글을 한꺼번에 옮기려니 버겁지만...조만간 끝을 보려구요)
밤 10에서 11시 사이가 되면 스탠드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요. 그리고 시집과 필사할 노트와 만년필을 꺼내고 이어폰을 꼽아요. 핸드폰에 깔아 놓은 KBS 라디오 class FM 채널을 틀어요. 잠시 음악을 들으며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시인의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한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눈으로 마음으로 시를 한번 읽은 뒤 필사를 시작해요. 시인의 마음을 받아 적으면서 시 속 세상으로 빨려들어가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자의 세상과 저의 세상이 겹쳐지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땐 눈을 감고 그 세상에 머물러요. 어떤 색깔로 세상이 물들었는지 어떤 말들이 오고 가는지 어떤 것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는지를 느끼죠. 찰나의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이 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하답니다.
정말 기분이 안 좋을 땐 시 속 세상으로 못 들어가기도 해요. 강한 외부의 어떤 에너지가 목덜미를 꽉 잡고 있단 느낌이랄까.
오늘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답니다. (글을 쓰다 보니 하루가 넘어가버렸네요)
2022년 2월 17일 목요일에 만난 시는 나태주 시인 <초저녁의 시> 예요. (아마 나태주 시인의 시집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한 권을 다 필사하게 될 것 같네요. 읽다 보니 너무 좋아서 말이죠)
화자가 어둠 속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 보았어요.
화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제 마음이 보인답니다. 아, 결국 화자는 나였구나. 대체 나는 무엇을 향해 이 어둠을 뚫고 가고 있었던 걸까라는 물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나에게 그대란
삶의 끝에 서 있는
'나' 자신이었단 걸 알았죠.
생에 끝자락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있을까?
질문을 곱씹다보니 인생이 아무리 거칠고 험하게 날 대해도 끝을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To.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에게
가다 보면 언젠가 닿을 수 있겠지요.
캄캄한 터널 속 밤을 지나
어스름한 새벽의 강을 건너면
당신 만날 수 있겠지요.
쪽빛 가로챈 붉은 태양이
밤새 눈물 젖은 대지를 감싸 안을 때
당신 만날 수 있겠지요.
가다 보면 언젠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겠지요.
@write_napul
몇 번이나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새벽의 강을 건너야 할지 몰라 조금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생이 다할 때까지 살아보려고요. 우리 함께 살아내봐요.
-고마워요. 오늘도 살아내줘서.
참고도서: 나태주 시인 필사 시집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
# 매일 밤 같은 시간 시인의 마음을 읽고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시인이 건네는 말에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시인에게 답장을, 무언가를 향해 꽁꽁 묻어 두었던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어 끄적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잠자리에 듭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나풀나풀 세상을 걷고 싶은 생명체 81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