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꼭 제자리로 돌아와야 해요
힘들 때 도망치는 건 도움이 될까요?
힘들 때 도망치는 일. 예전에 제가 자주 하던 거였어요. 힘들다는 건 내게 닥친 어떤 일이나 상황들을 견딜 수 없단 이야기잖아요. 견딜 수 없으니 피하고 싶고 피하려면 이 상황 속에서 멀리 달아나야 할 것 만 같고. 스물 중반전까지는 제가 힘든 상황을 스스로 만든 적은 거의 없었어요. 타자에 의한 괴로움, 고통 속에 머무른 날이 많았죠. 그땐 어리기도 했고 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들이 어찌 되었건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도 아니었고..... 마음으로 힘들긴 했지만 도망치거나 피해야겠단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어렸기 때문에......
스물 중반이 넘어서부터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아이였을 땐 삶의 방향을 정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누구나 아이였을 땐 주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자아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말 그래도 선택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거였죠.
어릴 적엔 '책임'이라는 말에 부합하지 못한 어른 들을 보면서 '어른인데 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걸까? 자신의 삶이고 자신들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들인데 왜 저렇게 밖에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른이 되어보고 나니 선택한 대한 책임들이 얼마나 버겁고 무게가 막중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자신들의 힘으로 이 상황이 바뀔 수 없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히면 쉽게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걸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어른'도 결국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어른이 되고 나니 인간관계, 삶의 방향, 공동체에 머무는 일들, 직업, 학업, 연애, 사랑 등등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나의 선택에 대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생기면 자연스레 뒤로 한발 자욱 물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가 아니라' '피할 수 있는 건 피해 버리고 그냥 무작정 도망가'라는 태도로 문제들을 대하기 시작했어요. 서른 초 중반까지 이랬던 것 같아요. 이십 대 후반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속세를 떠나는 '도피'를 선택하기도 했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세상적인 모든 문제들을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한없이 나약한 나를 보게 될까 봐. 그 모습을 내가 인정하기 싫으니깐. 나도 좀 잘난 사람이고 싶고, 나도 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마음처럼 그게 안되니깐 도망을 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도망치면 아주 잠시는 괜찮더라고요. 정말 잠시였죠. 문제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복닥거리고 있고, 도망을 치게 되니 나 혼자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아 또다시 외로워지고...... 외로워지니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고...... 이것이 끊임없이 무한 반복이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가끔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왔을 거라 생각해요.
전 아주 잠깐의 도망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힘든데 어느 누가 계속해서 안 힘든 척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슬픔, 괴로움, 고통, 외로움..... 이런 감정들을 충분히 스스로 느끼고 난 후에야 비로소 문제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고 전 생각해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자기만의 동굴 속에 갇혀선 안돼요.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고 마음을 정리한 후 다시 문제와 마주할 에너지를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만큼만 도망쳐야 해요. 힘든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다시 문제로 되돌아가 진짜'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또 다른 삶으로 전진할 수 있어요. 이게 참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거 잘 알아요.
그러니 아주 잠시만 도망치세요.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잃어버리면 안 돼요! 다시 꼭 돌아와야 해요! 혼자가 힘들면 우리 함께 그 문제와 마주하도록 해요! 만약 누군가 곁에 없다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길동무가 되어주세요.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나를 너무 잘 아는 나 자신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요!!!
내 안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용기를 심어 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