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두려움 앞에 굴복하는 것.
배워보고 싶었으나 여전히 마음속에 담아둔 '내 꿈'. 미련이 남은 내 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돌아가신 아버진 살아생전 술을 참 좋아하셨다. 늦은 밤 거하게 한 잔 잡숫고 들어와 잠이 든 동생과 나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진 우리를 잠에서 깨운 후 무릎을 꿇어 앉히고는 "그래 너희들은 커서 뭐가 될 거냐? 어느 대학에 갈 거니? 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를 연신 물어대셨다. 비몽사몽 잠결이었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 00대학 국문과에 들어간 후에 선생님이 될 거예요. 국어 선생님." 그렇게 밤마다 술을 드시고 와서 어린 자식들을 흔들어 깨우던 아버진 우리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은 것이 다였다.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간절한 자식들의 바램은 그냥 술김에 흘려보냈다. 당시 아버진 자신의 우울한 삶 속에서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진 공부를 하고 싶어 했던 우리들을 위해,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자신의 삶조차 포기하며 사셨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살며 난 정서적인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선생의 꿈을 세월의 바람과 함께 흘려보냈다. 꿈이라는 것은 내게 사치였단 듯이. 문학을 좋아했던 소녀는 너무 급하게 세상을 알아버렸고 그 세상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법을 어느 누구보다 빨리 터득해야만 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선무였다.
늘 배움이 고팠다. 지금도 난 배움이 고프다. 20대 초반 가족들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나만을 위해 다시 공부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외로움이 내 모든 것을 집어삼켜 도저히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포기했다. 아직도 정서적인 안정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를 핑계로 내세웠다. 혼자서 돈을 벌고 공부하는 건 도저히 못하겠다고 포기했다. 이렇게 시도하고 포기하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건 다 핑계였다.어릴 때야 부모의 보살핌이 중요하니깐 어쩔 수 없다 쳐도 스스로 자립해 그렇게나 갈망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안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단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배움으로부터 서서히 뒷걸음쳐 달아나 버렸다. 그땐 나 역시 가정과 삶을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아버지처럼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해봤자
난 안될 거야.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걸
이런 내가 뭘 하겠어.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포기의 이유를 합리화 시켰다.
시를 쓰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나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때 나를 떠올리고 내게 달려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내 꿈은 현실과 점점 멀어져 갔다. 꿈을 잊은 채 지금 여기까지 와버렸다. 곧 있으면 내 나이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이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어보고 싶었다.
잊고 있던, 아니 마음 한편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남아 어느 날 문득문득 내 가슴을 후벼팠던 나의 꿈. 더 늦기 전에 송곳 같던 꿈을 밖으로 끄집어 내보려고 한다. 그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 예전처럼 세상 탓만을 하면서 남은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거라는 걸. 내 한계를 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꾸준히 해 보겠다는 것.
앞으로는 해보지 않고
물러서는 일은 없을 거야.
뭐든지 끝까지 해볼 거야.
만약 포기를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말이야.
<앞으로 이루고 싶은 나의 정체성>
배우고 나눌 줄 아는 사람
스스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들 줄 아는 사람
더불어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사람
사랑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
# 끝까지 해보자! 숨이 차오를 때까지! 끝을 만날 때까지! 삶이 계속 되는 한 포기하지 않는 저의 도전은 계속 될것입니다!!! 아자자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