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순간.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내 손으로 그녀의 문장들을 챙겨 본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애란. 소설가라 알고 있었다. 독서모임의 한 지인분이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이라는 책이 좋다고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추전 한 책이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김애란 작가에 대해 검색하고 그녀의 작품들을 대충 훑어보고 말았다. 그게 다였다. 관심 밖에서 멀어질 무렵 또 다른 지인이 <잊기 좋은 이름> 이란 책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장이 너무 좋아요 캬' 좋다는 말보다 '캬'라는 감탄사에 순간 끌림이 일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캬'라는 단어 하나가 우릴 만나게 했다. 고작 그 이유 하나가.
<잊기 좋은 이름>은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예전엔 에세이도 제법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에세이는 직접 구입해서 보지 않게 되었다. 늘 도서관에서 빌려 봤었는데. 그런데 올 여름 초입에 들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내 사정을 대리 만족하기 위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구입한 이후, 두 번째로 에세이에 내 지갑을 열었다. 누군가의 감탄을 연발하게 했던 그녀의 문장을, 제값을 주고 내 마음에 들이고 싶었다.
습하고 묵직했던 바람이 어느새 가벼워진 가을 초입에 들어선 어느 날. 그녀는 날 모르지만, 난 이제 그녈 알아가겠단 사적인 마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그녀의 지난 삶 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녀를 관찰해 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서랍 속에 고이 담아 두었던 짧은 이야기들. 이 책이 발간되기 이전 그녀가 지내온 날들 안에서 만난 수많은 이름들에 대한 기억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 제목을 보고 왜 '잊기 좋은 이름'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혼자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을 그녀가 적어 내려간 문장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삶 안에서 자신 이외의 존재들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 어떤 말로 불렀는지. 그리고 그녀는 너라는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불렀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너를 안고 나는 내 팔이 두 개인 것을 알았다. 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그래' 나는 팔이 두 개였지'중얼거렸다. 나는 곧 내 다리가 두 개인 것과 내 입술이 하나인 것도 알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다 정말 내 이름을 알게 될까 봐.(p.76)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 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p.124)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p.141)
나란 이름이 누군가의 이름 속에 함께 존재해왔었구나. 잊고 있었어. 온 우주가 그저 나를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생각했었는데. 착각 속에 빠져 마치 내가 세상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지냈었구나.우리는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언젠가 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 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종이를 동그랗게 구기면 주름과 부피가 생기듯 허파꽈리처럼 나와 이 세계의 접촉면이 늘어난다고 했다.(p.250)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p.252)
만일 문학에 전통이란 게 있다면 그중 우리가 이어나갈 게 있다면 그건 단순히 소재나 형식이기 전에 사람과 이 세계를 대하는 어떤 태도 혹은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죽은 자를 기리려 한다는 건, 잘 묻으려 한다는 건 결국 삶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p.253)
그녀는 이전의 원고들을 다시 읽고 고치면서 '이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풍경. 사물. 사건의 이름들이. 오래된 기억 안에 있어 어떤 이름들은 잘 모르고 어렴풋이 기억하며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부르려다 잘 못 호명한 이름들도 적지 않다고. 그녀는 이 책에서 그런 자신의 한 시절과 그 무능한 마음을 담았다고 말한다. 기억 속의 이름들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어떤 눈부신 순간도 담겨 있다고...
그녀가 다시 쓰고, 부르고, 고치던 그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과거의 어떤 공간 속에 머물렀을까? 그리고 어떤 계절 속 이름들이 특히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을까? 어떤 이름들은 희미해져 잘 못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이름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칼끝처럼 날카롭게 남아 다시 꺼내 부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나. 너. 우리들이 불렀던 수많은 '이름'들. 내겐 어떤 이름들이 기억 속에 남아 지금의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지나온 나의 계절 속 이름들을 꺼내어 본다. 내겐 어느 계절이 그리도 시렸는지. 어느 계절속 이름들이 그리웠고 어느 계절의 이름들이 따스함으로 남아 있었는지......
나 역시 부르려다 만 이름. 부르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름. 빛바랜 종이에 적어 놓고 억지로 잊어버리려 했던 이름들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그 이름들과 함께 존재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 머물면서...
<참고도서 : 잊기 좋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