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는 없어요. 삶을 쓰고 싶었어요.
제 삶이요. 저만 아는 제 삶 말이에요.
여러 해를 살아오며 늘 마음속에 품었던,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시인'
'글을 쓰는 사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나 학급 산문집을 만드는데 그곳에 아주 짤막한 시를 써서 낸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님 엄마가 떠난 후, 결핍이 시작된 그 무렵부터였을까?
외로워서 끄적거렸고, 사랑이 고파서 끄적거렸다. 어느 땐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들을 글로 마구 쏟아낸 후 불에 태우기도 했다. 무언갈 적는다는 행위를 통해 감정이란 걸 느끼고 나를 알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만 품고 있던 걸 이제 겨우 세상에 꺼내 놓았다. 과연 세상이 나를 품어 줄까?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계속 망설이기만 하다 삶을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삶을 붙잡고 기다리라 말했다. 이젠 내가 널 끌고 가겠다고. 여태껏 흘러가는 대로 따라갔다면 이젠 내가 삶, 너를 이끌어 가보겠다고.
글을 쓰면서.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들은 아마 결핍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누군가는 결핍이 있어야 공감할 줄 알고 삶을 사랑할 줄 안다고 말한다. 허나 너무 과한 것도 독이 된다. 지금까지 내 삶에선 결핍은 그런 존재였다. 결핍으로 인해 생긴 독의 밀도와 강도는 거대했다. 그로 인해 휘청거렸던 삶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쓸 거다. 그래야 내가 사니까.
난 늘 먼저 공감해주는 입장의 삶을 살아왔다. 이젠 글을 통해 나도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삶의 퍼즐을 한 조각 끼울 때 내 이야기가 드문드문 생각나 피식하고 웃었으면 좋겠다.
저도 공감받아 보고 싶어요. 글을 통해서.
저 이 정도 사치, 부려도 되는 거죠?
그렇죠?
쓰고 싶은 거창한 이유 따윈 없다. 그냥. 살아 있는 동안 내 이야기. 너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쓰며 내가 위로받고, 또 너를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