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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Oct 27. 2019

아무리 없어도

궁상도 때에 맞춰.


주말이니까 늦잠 자야겠다는 생각과 반대로 몸은 노동을 시작하기 위해 맞춰진 생체 알람에 자연스레 반응해버렸다. 의식반 무의식반. 혼미한 상태로 화장실엘 갔다. 간밤 체내에 쌓여있던 뇨를 배출하고 세면대 앞에 섰다. 오른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긴 머리를 내리 쓸었다. 상하고 엉킨 머리칼은 긴 머리 반도 빗겨지지 않았다.




'아... 머리카락이 많이 상했네. 어우. 흰머리까지 생기고. 확 늙었다. 진짜. 내가 미용실에 간 게 언제였더라. 영심이가 결혼하기 전이었으니까. 3월 말에 미용실 가서 머리 다듬고 파마한 후로 한 번을 안 갔구나. 오늘 미용실을 가? 말아?!'




박봉에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터라 좀처럼 헤어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일 년에 기껏해야 두 번 정도 가는 게 다다. 머리를 기른 이유도 그 하나다. 돈 아끼려고. 간간이 염색을 하긴 하지만 이 역시도 한때 미용을 했던 친구에게 셀프로 부탁했다. 그런데 3월 이후로 염색도 파마도 커트도 한 번을 하지 않고 버텼다.




'그냥 집에서 내가 잘라볼까. 인터넷으로 검색이나 해보자. 긴 머리 셀프로 자르는 방법을 얼핏 본거 같았는데. 역시. 웹상엔 없는 정보가 없네~' 삼을 발견한 심마니의 기분이 들었다. '돈을 아낄 수 있겠어. 훗. 혼자 잘라보자.' 한 외국 여성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긴 머리 셀프로 자르는 법' 긴 머리를 정수리까지 끌어올려 묶은 후 원하는 길이만큼 자르면 알아서 머리칼에 층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된다고 한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머리칼을 묶고 욕실에 쭈그리고 앉아 잘랐다. 묶인 머리를 풀었다. 아뿔싸. 이미 층을 많이 내고 계속 자랐던 머리칼이었던 지라 앞쪽 부분의 머리칼만 층이 더 난 채 잘려버렸다. 더 볼품 없어진 머리칼을 빗질을 하다보니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갑니다. 오늘. 미용실에. 머리 할 겁니다.





그냥 미용실에 가면 될 걸 몇 푼 더 아끼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거울 속 나를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결핍과 가난으로 인해 궁상맞음과 처량함의 끝판왕을 맞본 내 꼴이 우스워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득 어제 다녀온 카카오 브런치 크리에이터스 데이에 강연을 해주신 작가님들 중 '강이슬'작가님이 가난에 대해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 가난과 결핍에 대해 생각했다.




'가난에 대해 말하자면 나를 따라올 자 없을 텐데. 나도 그 썰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거야. 지금도 봐봐. 내 오래된 결핍의 사이즈가 어떤지 딱 답이 나오잖아. 내 결핍의 스케일은 어디 갔다 붙여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는데. 사이즈가 너무 커도 문제다 문제. 뭐든지 균형이 있어야 한다니깐. 결핍이 너무 과해도 안 좋아... 결핍이랑 가난 따윈 갖다 버리고 싶다 정말.'




가난. 내 탓 한번. 세상 탓 한번. 쌍방과실이다. 둘 다 유죄.




나는 왜 이렇게 결핍이 넘치는 자가 되었을까? 결핍이 많은 게 글감이 되어 좋긴 하다만 뭔지 모를 씁쓸한 마음이 밀려온다. 내 결핍에 대해 쓰다 보면 언젠간 뭐가 좀 채워지려나?




욕실 바닥에 잘려나가떨어진 머리카락이 내 안에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어떤 결핍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하며 쓸어 담았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신 돌아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아직까진 마음의 결핍으로 인한 어떤 공허함은 금방 재생이 된다. 하지만 이놈의 경제적 현실의 결핍은 재생, 회복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해 본다. 마음이라도 좀 채워지면 나으려나 싶어.




'에혀. 어차피 미용실에는 가야겠네.' 통장에 남은 잔고 확인을 한다. 이번 달은 어디서 뭐 아껴 써야 할지 고민이다. '아. 나는 언제쯤이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런가? 설마 죽은 다음은 아니겠지? 만약 그럼 억울해서 못 죽을 거 같은데 ' 순간 궁핍해진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볕이 유난히도 쨍하게 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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