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비행운>속 등장인물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작가가 마치 내 삶을 몰래 엿보고 쓴 것 같았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니 이미 나와 주변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더 싫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너무 이해가 돼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던 소설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올 결심을 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집 안 가득 황홀하게 쏟아지는 햇빛. 평수에 비해 싼 가격. 지하철과 가까운 거리. 미닫이로 된 허술한 방충망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조건이었다. 우리는 집을 구하느라 꽤 애를 먹고 있었다. 낮은 금리 탓에 전세 매물이 거의 나와 있지 않아서였다. 어쩌다 전세가 있다 해도 우리가 가진 돈보다 기천만 원 이상을 웃돌았다. 방을 빼주기로 한 날은 다가오고, 조건에 맞는 집이 없어 초조하던 차에 장미 빌라를 발견했다. 우리는 경솔할 정도로 성급하게 계약했다. 이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는 건 이사 후 한 달이 지나 알았다.
<김애란 '벌레들' 중 p.49>
'벌레들'의 신혼부부는 십자 모양의 장미 빌라로 급하게 이사를 온다. 빌라 뒤편이 낭떠러지와 연결되어 있고 곧 허물어질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빛이 잘 들어 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을 덜컥 계약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탓에 깊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성급하게 결정해 버렸다. 살다 보니 주거지로 적합한 조건들이 하나도 없는 장미 빌라. 여자는 집안에서도 또렷이 들리는 차 소음 때문에 참다못해 남편에게 하소연을 한다.
"오빠, 나 저 소리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왜 난 괜찮은데." "오빠는 주로 밤에 들어오잖아. 나는 종일 집에 있어야 된다고." "라디오를 좀 들어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소리가 아니라고, 그냥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상태, 그뿐이라고." 정말 그랬다. 고요는 오존층처럼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투명한 막 같은 거였다. 물이나 햇빛처럼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그런데 차 소리가 그걸 자꾸 찢고 들어왔다.
<김애란 ' 벌레들' p.57>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아득한 시간에 놓인 고단함을 미리 끌어당겨온다. 앞날의 두려움을 지금 당겨오면 왠지 미래의 고단함의 부피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만 같다. 현재와 미래의 고단함의 무게가 합쳐져 온몸을 짓이긴다. 힘들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속으로 발악하지만 절대 겉으로 티내진 않는다. 속은 문드러져 가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다 겨우 입 밖으로 고단함을 토해 보지만 지금 당장 해결방안은 없다. 지금을 견뎌야 미래의 고단함이 줄어드니 다시 참고 버틴다. 여자는 버텼다. 그저 해가 잘 드는 고요한 집을 원했던 것뿐이었는데. 위 대목을 읽으며 이게 그녀에게 당장 바라면 안 되는 욕심이라는 사실에 목이 탁 막히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 부아를 속으로 눌러 담았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서. 왜 욕심인지 알기에 답답한 가슴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알람이 울리자 기옥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순간 메마른 형광등 아래로 한 가계의 남루와 수치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취향도 계통도 없이 어지러이 놓은 세간도 그렇고 애석하다 못해 어딘가 참혹한 느낌을 주는 기옥 씨의 머리도 그랬다.
<김애란 '하루의 축' 중에서 p.172>
작품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결핍은 곧 수치다. 세상은 수치의 크기로 인간 계급을 나눈다. 왜 결핍이 생기기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조차 알려고 하는 이들도 없다. '하루의 축'에 나오는 기옥 씨가 일을 할 때 마다 왜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던 것처럼. 세상은 그녀의 모자 속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결핍으로 생긴 외로움은 수치스러움 앞에서 더 이상 외로움이 될 수 없다. 숨겨야 하는 어떤 것. 마치 몰래 훔친 남의 물건을 두근거리며 숨겨야 하는 좀 도둑의 마음처럼. 누군가는 결핍이 있어야 꿈을 갖고 희망으로 삶을 살아간다 말한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결핍을 꿈으로 채워 나가는 건 죽는 것만큼이나 버겁고 힘겨운 일이 되어버렸다.
푸드파이터는 뜻밖에 여자였다. 게다가 늘씬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몸에 딱 붙는 탱크톱에 치어걸들이나 이비는 노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선배가 왜 나를 불렀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간절하게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주위에 뚱뚱한 사람을 세워둔 뒤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마른 여자가 저렇게 비만인 사람들보다 잘 먹는다는 걸 알리려고. 나는 의상 담당자가 준 옷을 입고 한동안 밖에 나오지 못했다. 제작진이 일부러 한 치수 작게 준비한 레슬링 복이었다. 꽉 끼어 불편한 옷에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자, 옆구리 살과 뱃살이 볼품없이 드러났다. (중략)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타이르며 격려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상처가 됐다. "미영아, 그냥 평소 너 먹는 대로만 해. 긴장하지 말고, 알았지?'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중 p.33~34>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선배가 장례식을 가려던 미영에게 연락을 해 온다. 방송국 피디를 여러 번 낙방을 하고 최근 어느 케이블에 에이디로 취업한 선배이다. 먹기 대회 우승자를 띄우기 위한 조연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그 자리를 메꿀 사람이 필요해 연락을 했던 것이다.
나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타인의 수치를 이용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나의 미약함을 덮으려 너의 수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상대의 수치는 어느새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하나의 흠이 되어버린다. 태어날 때부터 저리 태어난 사람. 원래 저런 운명을 지닌 사람으로. 타고난 게 저러니깐 그에 맞게 대하는 거라고 합리화를 시키는 것 같았다. '응당 너는 그리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미영의 선배의 태도를 보며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연락도 없이 잊고 지냈던 그 시간속 미영의 모습이 어땠을지 이미 예상을 했다며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그가 못마땅했다. 그녀를 욕보이게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그놈이 얄미워 미영대신 따귀라도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비행운>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짜증과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세상으로부터 처절하게 고립된 이들의 외로움의 모습이 너무 찌질했고 작가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 부아가 치밀어 오른지도 모른다.
아슬아슬 한발로 겨우 버티는 삶의 외줄 위에서 행복을 기다리다 지쳤지만 그 불안한 외줄에서조차 내려올 용기가 없어 어쩔수 없이 외발로 삶을 버티고 있는 김애란 작품 속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고독함. 나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삶에 행복을 안은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남은 삶을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내보려 한다.
<참고도서: 김애란 '비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