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세상
감각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것의 역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부터 모든 감각이 제한된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불행하다’고 말한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감각,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존재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손끝을 통해 세상의 온도와 질감을 느낄 때, 우리는 세상의 복잡함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린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각기 다른 감각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우리는 그들을 해석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 해석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은 우리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감각이란, 단순히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이상의 것이다. 감각은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며, 그 통로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불확실성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입으로 느낀 것들은 항상 해석을 필요로 하고, 그 해석 자체가 주관적이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은 언제나 세상을 온전하게 인식할 수 없는 그 한계 속에 놓여 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현실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본인만의 ‘진실’을 구성해 나간다.
그런데 만약 모든 감각이 제한된 상태에서, 그 감각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불확실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어두운 방에 갇혀 있는 듯한 존재가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를 알지 못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의 자극이 없기에, 그의 세계는 전혀 왜곡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그는 단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감각에 의한 복잡한 해석, 이해, 판단이 없기에 그 존재는 혼란스러움이나 불안이 없는 순수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불확실성을 직면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럴 때, 그가 느끼는 것은 오히려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왜곡하거나 평가할 필요 없이 그저 존재하며, 그 자체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이란, 일반적으로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감정과 욕구를 느끼며 달성되는 것이지만, 감각을 통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줄일수록 오히려 더 큰 안정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할 수 있다. 감각이 없는 존재, 즉 감각을 제한한 존재는 복잡한 세상의 갈등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오직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확실성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감각을 통한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려 한다. 그 해석의 과정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불확실성이란 그 자체로 불안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진정한 행복이 올 수 있을까? 그 사람은 감각이 차단된 채 세상의 복잡함을 알지 못하고, 그 속에서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 집중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끊임없이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자아를 찾고, 또한 불확실성과 갈등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행복을 찾는 과정은 단순히 감각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의 가장 첫 번째 발판이다. 우리가 현실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찾고, 의미를 만들고, 삶의 방향을 찾는다. 결국 불확실성은 우리가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이기도 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복잡하게 만든다.
괴리
눈을 뜨는 것은 어둠을 깨우는 저주이자 축복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끝없는 미로를 헤매는 저주이자 축복이다.
본성을 따르는 것은 야수의 갈망, 저주이자 축복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끝없는 목마름, 저주이자 축복이다.
가슴속 심장이 뛰는 소리, 살아있다는 것이 저주이자 축복이며,
잠든 땅에 흩어지는 숨결, 죽어있다는 것 또한 저주이자 축복이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발끝을 허공에 두는 저주이자 축복이다.
현실에 존재함은 인지하는 저주이자 축복이며,
이상에 머무는 것은 허공을 붙드는 저주이자 축복이다.
나와 너,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도 저주이자 축복이다.
인간으로서 사는 것은 부조리하다.
나란 존재도 부조리하다.
그러나 부조리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부조리는 이 세계의 숨결이며,
현세에서 가장 당연한 것이다.
혼돈의 파도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를 움켜쥐어라.
부조리의 환경에서 확실함을 만들자.
부조리의 환경에서 부조리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자.
확실함을 믿자.
이것 또한 저주이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