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창조
우리는 평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평가를 갈망하는 본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확실함으로 이끈다.
나라는 존재가 변하지 않기를, 세상이 명확하고 안전하기를,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기를 바란다.
희망이란 그 갈망에서 비롯된 욕망의 흔적이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이 정말 우리 자신으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 손에 쥐여준 무언가에 불과한가?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는 좋은 아들, 유능한 가장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가족과 사회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잃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무너졌다.
그의 희망은 속박이었다.
희망은 때때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불행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희망이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다고 믿으려는 집착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는 순간을 불행이라 말하지만, 사실 희망을 품는 순간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우리는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확실함을 만들어내려 애쓴다.
그리고 그 갈망은 결국 타인을 향하게 된다.
인간은 쉽게 자신의 확실함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대신 타인에게 의존하여 평가의 기준을 부여받으려 한다.
그것이 더욱 쉽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를 종교, 도덕, 법,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세계에서 비롯된 불확실한 기준들일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확실한 것이라 믿으며 안도하려 한다.
그 믿음은 무지다.
세상이 말하는 확실함은, 확실하다고 믿어도 될 확률이 조금 높은 것일 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것은 무아(無我), 즉 나라는 존재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뿐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희망을 주는 것들을 경계하자.
가짜 희망은 인간을 속박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옭아매는 제도와 규범의 굴레일 뿐이다.
신호등을 보라.
신호등은 우리가 수 초 뒤에도 길을 건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다.
그리고 우리는 신호등이 알려주는 파란불에 맞춰 길을 건넌다.
단순한 시스템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규율에 종속되어 있다.
그것이 법이고, 교리이며, 사회적 약속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삶은 진정한 자유를 버리는 삶과 같다.
진정 자유로운 자는 고독해 보인다.
그는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강요가 아닌, 사회를 택하는 자이다.
그는 목적이 없다.
타인의 평가와 규율을 거부하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창조한다.
고독을 선택한 이는 이방인이다.
사회는 그들을 배척하며, 그들만의 확실함을 위협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의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과 다르다.
쾌락에 안주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평가의 기준을 삶의 방향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묻겠다.
자네는 사회 속에서 살아야겠는가?
인간들과 함께 공존해야겠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와 공존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회에서 살겠다.”인 것이다.
있어야 한다가 아닌 있겠다. 의 정신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선택하는 것이다.
사회가 필요하다면 사회 속에 머무르되, 필요 없다면 과감히 떠나라.
목적이 없는 자가 되어라.
방황하라는 뜻이 아니다.
쾌락과 본성을 추구하지도, 그것을 부정하지도 말라.
흘러가는 대로 확실함을 바탕으로 확실함을 만들어라.
무아를 깨닫고 나만의 가치를 창조하라.
나를 고정되지 않게 하라.
나만의 기준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것은 창조를 강요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먼저 진정한 자유를 알아야 한다.
희망을 거부하지도, 따르지도 말라.
그저 수긍하라. 받아들여라.
타인이 주는 희망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희망을 찾아라.
하루하루가 스스로의 희망으로 채워질 때, 그때야말로 진정한 자유에 가까워질 것이다.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순간순간이 자유로운 자가 행복한 자이다.
바다, 하늘, 땅. 믿기 나름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고독해 보인다.
그는 스스로의 확실한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며, 사회의 평가로부터 무심하다.
그렇게 그는 매 순간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