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정시키려는 의도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알고리즘의 추천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안합니다. 영상 제목, 내용, 음악의 장르와 톤 등, 모든 것이 결국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우리 자신이죠.
사실, 알고리즘 자체는 단순한 도구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도구가 추천하는 “나”를 우리가 진짜 나라고 믿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영상이나 음악들을 보며, 우리는 “이게 내 취향과 딱 맞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천 콘텐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비슷한 부류의 콘텐츠만 내 홈 화면을 지배하게 됩니다.
어쩌면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나의 취향과 특성을 “정의”해주고, 번거롭게 이것저것 찾아다닐 필요 없이 바로 답을 내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나”를 믿고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게 됩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해 보거나 익숙하지 않은 영역으로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변화를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사실, 변화하는 내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실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를 고정된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그 점을 정확히 이용해 우리에게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확실성을 제공합니다.
저 역시 최근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Oasis의 음악을 좋아하는 저는 늘 Don’t Look Back in Anger나 Wonderwall 같은 곡들만 듣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애플 뮤직이나 유튜브의 추천도 브릿팝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저는 그 흐름 속에 머물렀죠.
그런데 어느 날, 히스토리에서 우연히 떠오른 델리스파이스의 곡을 클릭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였지만, 다시 듣는 순간 신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낯설고 새로운 느낌은 단순히 다른 장르의 음악 때문만이 아니라, 잊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마주한 기분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글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델리스파이스의 음악을 다시 듣고 나서야, 저는 내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취향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조차도 스스로를 고정시키며 묶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만,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탐구할 여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변화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더 풍부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줍니다.
알고리즘은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를 사용하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그 틀 안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나를 탐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