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실존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듯,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언어가 확장된다는 것은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사람을 처음 대할 때 우리는 옷차림이나 표정 같은 외적인 요소를 살피지만, 그가 사용하는 말투와 단어 선택 또한 중요한 첫인상을 결정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출신 지역을 짐작하는 것처럼, IT 개발자들이 일상에서도 개발 용어나 영어 표현을 섞어 쓰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직업적 배경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언어 습관은 그 사람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분야에 익숙한지 드러내는 관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쓰는 단어의 범위는 곧 내가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이기도 하다.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그 뜻을 체득하다 보면, 그 단어를 중심으로 사고의 폭이 확장된다.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단어를 접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내 말과 글에 녹아든다면, 사고 과정 자체가 점차 풍부해진다. 어떤 사람이 교양이 깊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어려운 단어를 남발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어의 선택뿐 아니라 말투, 목소리 톤, 그리고 표정과 태도까지 종합적으로 인상에 영향을 준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상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는지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가 무뚝뚝한 어조와 단어를 쓴다면 화가 많거나 쉽게 짜증을 낸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부드러운 어투와 따뜻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단어 선택은 공감의 폭을 키우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대방의 배경지식이나 이해 수준을 고려해, 적절하고 알맞은 단어를 택할 수 있다면 대화가 훨씬 더 유연하고 풍부해진다. 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어려운 단어를 마구 쏟아내면서 상대에게 과시하려 든다면 오히려 소통이 어려워지고, 자칫하면 ‘보여주기식 지식’을 뽐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귀애, 익애, 절애지 같은 단어들은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시다. 사랑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강렬한 힘을 갖지만, 거기서 나아가 좀 더 섬세하게 관계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이렇듯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기존에 단순히 “사랑”이라고만 말하던 상황에서 조금 더 깊고 특별한 뉘앙스를 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언어의 확장은 내 사고와 감정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도록 돕는 셈이다.
결국 사람이 쓰는 언어는 그 사람 자체를 보여주는 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 단어들이 모여 만든 언어적 자산이 대화와 사고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 만난 타인을 관찰할 때 우리는 그가 뱉는 말들을 통해 그의 인품과 지적 범위, 심지어 살아온 배경까지 짐작한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의 단어 선택과 말투 역시, 타인이 나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언어를 고르고 표현을 가다듬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내가 어느 지점까지 세상을 넓히고 또 얼마나 깊이 공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