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한
분명 "오늘도 긍정적으로 살아보자!"라고 굳게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결심이 사그라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닥치는 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심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몇 개 훑어보고 릴스를 잠깐 보다가 끄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뜬금없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래도 곧 군에 입영한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지금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자기 합리화로 부정적인 감정을 겨우 떨쳐내려 애쓴다.
그렇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기지개를 쭉 뻗는다. 창밖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앞을 비추고, 그 빛이 방 안을 가로지르며 먼지들을 생동감 있게 떠돌게 만든다. 마치 나 역시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같아,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밖에 나가자는 내 나름의 규칙에 따라, 가벼운 차림이지만 어쨌든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다.
아침이 조금 지난 9시나 10시쯤 도심에 나오면 이미 세상은 분주하게 굴러가고 있다.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대학 생활에 익숙해, 강의와 과제에 치여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당연시했던 내게, 이 아침 풍경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학교라는 안락한 환경 덕분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회를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싶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거나 과제를 하느라 늦게 잤고, 아침에는 마음 편히 늦잠을 잤다. 물론 주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알차게 쓰는 친구나 선배도 많았고, 그들을 보며 나 역시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맞나?' 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종종 '왜 저렇게 바쁘고 힘들게 사나?'라는 합리화로 바뀌었다. 불편함을 느낄 때면, 이는 곧 나도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걸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렵다는 내면의 신호였다. 열심히 산다는 행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오히려 덮어두고, 이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살다 보면 현타와 자기 합리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 어떤 일을 도전했다가 어영부영 접어두거나, 반대로 계속 도전하다가 또 언젠가 사라져 버리는 이벤트들의 연속. 그러면서도 '원래 인생은 이렇게 힘든 거야',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거니까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래, 원래 힘든 게 맞긴 맞지"라는 위로가 오히려 나를 그 상태에 안주하게 만들진 않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중요한 건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인 것 같은데, 왜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고 외면하려 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민을 길게 풀어낸 뒤에는 어떤 마음이 들까? 사실 현타와 자기 합리화가 생기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빠른 자기 성찰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을 글로 표현하고 나면, 묘하게도 마음이 한결 후련해진다.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랄까.
물론 여전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옳을까?" 같은 궁금증이 남아 있다. 스스로를 과하게 압박하다 보면 지치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살면 텅 빈 공허감이 찾아온다. 중용을 찾는 것이 답인 것 같다가도, 또 한편으론 사람마다, 시기마다 적절한 중용의 기준이 다를 텐데 그건 또 어떻게 찾나 싶은 막막함이 스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목표 설정 같기도 하다. 분명 목표를 정해두면 삶에 활력이 생긴다. 내가 존재하고, 살아 있음이 조금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목표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그 목표가 어느새 본말이 전도되어 나를 갉아먹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한 번쯤 목표에 매몰되어 지친 경험이 있다면, 대학 입학 후에는 목표를 굳이 세우지 말자며 마음을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고 나니 삶이 텅 비어 버린 듯한 허무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의 의문이 생기고, 다시금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또 예전처럼 이게 나를 옥죄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 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대로 머무를 뿐일 테다.
생각이 많아도 힘들고, 생각이 없어도 또 다른 형태의 힘듦이 생긴다. 그래서 중용이 답이라고들 하지만, 그 중용의 지점이 어디인지 찾아내는 일은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에 가깝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걸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막연히 긍정적으로 살자는 다짐만으로는 실제 행동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기에, 작은 목표라도 세워 구체적인 행동을 설계해 보는 식이다. 또 중간중간 그 목표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 보면서, 내가 목표를 위한 삶을 사는지, 아니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목표인지 균형을 살피게 된다.
아직 답을 찾은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현타와 자기 합리화가 반복되는 내가 틀린 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목표 설정과 중용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불편한 감정들이 오갈 때마다 글을 쓰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아, 지금은 이렇게 사는 게 맞는구나'라는 작은 확신이라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확신이 무너지면, 다시 다른 확신을 찾아가면 되는 거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흔들림과 의구심, 자기 합리화와 현타가 바로 인생의 흐름 그 자체라는 걸,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복학을 하고, 사회에 나가고, 다른 역할을 맡게 되어도, 이런 고민은 형태만 달리해서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나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와 대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부단히 던져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걸음씩 고민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흔들림이 조금은 단단한 발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장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는, 매일 조금씩의 성찰과 사소한 실천으로 오늘 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자기 합리화이자 진정한 긍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