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원이 이렇게 적은 돈이었던가-
“유정아 빨리 일어나! 우리 KTX 타러 가야지"
전날 미리 맞춰둔 알람이 미처 울리기도 전에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평소 풀 메이크업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도 않는 나지만, 그날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황급히 가방에 온갖 화장품을 쓸어 담았다.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있는 내게 슬며시 엄마가 다가와 목도리를 건넸다. 새벽 공기가 몹시 차다며, 목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목에 두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귀찮았지만, 대충 둘러매고 ktx가 정차하는 신경주역으로 달려갔다.
한 겨울인데다가 새벽이라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를 애써 모른척 하며, 기차에 올랐다. 다행히 열차 안은 성능 좋은 히터 덕분인지, 집보다 훨씬 따뜻했다. 기분 좋은 온기에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엄마 어깨에 기대어 한숨 푹 잤다. 여기가 기차 안인지, 내 방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엄마와 내가 꼭두새벽부터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 방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상경 일주일 전이었기에 무조건 방을 구해야만 했다.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자마자, 우리는 부리나케 짐을 챙겼고 내리자마자 냅다 지하철로 달렸다. 평소 구두만 신고 다니는 엄마도 그날만큼은 많이 걸어야 하기에 운동화를 신었다.
겨울이라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역사 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엄마는 내게 "오늘은 우리 무조건 방 구해야 된데이. 안 그러면 니랑 니 동생은 서울에서 노숙해야 된다. 알겠나?"라며 사뭇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빨리 좋은 방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마, 엄마도 그랬겠지.
며칠 전, 미리 약속을 잡은 공인중개사와는 신림역 5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엄마와 잠시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몸을 녹이러 카페에 들렀다. 따뜻한 바람이 흘러나오는 히터 앞자리에 앉아 우리는 다시 한번 예산을 점검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오랜 논의 끝에 우리가 최종적으로 정한 예산이었다. 사실 보증금 예산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당시 경주의 집도 막 이사를 하여 잔금을 치른 터라 무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할 줄로만 알았다. 2명이 살 수 있는 좋은 방을 거뜬히 구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왜냐고? 경주에서는 롯*캐*, 푸*지*, 래*안 등의 메이저 아파트 32평형대의 월세가 35~40만 원에 불과했으니까. 아파트 월세를 살 수 있는 돈으로 원룸을 구하는 것이니 아무리 방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서울이라 해도 충분할 줄 알았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달콤한 음료까지 마셨더니 긴장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 얼마나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한껏 들떠 중개사와 방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명 전화로 두 명이 살집이기에 원룸이지만 평수가 좀 넓었으면 한다. 또, 좀 오래된 방이어도 깨끗했으면 한다고. 누누이 일러두었다. 중개사도 알았다고 걱정하시지 말라고 몇 번이나 내게 확인을 해줬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첫 집 문을 여는 순간 와장창 박살이 나버렸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가 무려 10만 원에 육박하는 집이었음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좁았다. 집이 아니라 창고 같았다. 설령 창고라고 하더라도 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여긴 내놓자마자 나가는 풀옵션이라 자랑하며 중개사가 당당하게 보여주던 냉장고도 충격 그 자체였다. 허름한 숙박업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낡은 냉장고였다.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엄마가 보내준 각종 김치며 밑반찬들을 보관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엄마가 애써 음식을 보내줘도 모두 실온에 방치해 둬야 할 판국이었다.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이 정도면 살기에 딱 괜찮지 않아요? 여기도 원래 월세 55만 원인데, 전에 살던 세입자가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집주인이 급한 마음에 5만 원 깎아서 내놓은 귀한 매물이에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중개사를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정녕 서울은 이런 곳이었던가. 50만 원이 이렇게 작은 돈이었던가.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려는 찰나, 엄마 얼굴을 슬며시 쳐다봤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우리 엄마였지만, 눈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도 나지만,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월세 50만 원이면 사랑하는 두 딸에게 좋은 방을 구해줄 수 있을줄 알았는데...방금 본 곳은 도저히 엄마로서 두 딸을 보낼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우리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중개사는 아직 자신이 준비한 것이 더 많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간 두 번째 집도... 세 번째 집도 모두 최악이었다. 최악보다 더 나쁜 표현이 있다면 그걸 쓰고 싶을 정도로. 심지어 어떤 곳은 반지하도 있었다.
이전 세입자의 옷장이 빠져나간 곳에는 곰팡이들이 오손도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에서 밥을 먹을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곰팡이 맛이 날 것만 같았다. 국밥을 먹어도 곰팡이 맛, 떡볶이를 먹어도 곰팡이 맛, 라면을 먹어도 곰팡이 맛이 날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단호하게 여긴 안 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우리는 월세를 올렸다. 무려 65만 원으로. 그제서야 좀 사람이 살 법한 집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역세권만 고집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포기했다. 집 컨디션이 우선이었다. 보안이 철저하고 깨끗한 집을 골랐다. 결국 좋은 집을 구했고, 그곳에서 2년을 살았다. 한 달에 65만 원이라는 거금을 흩날리며.
엄마와 나는 아직도 종종 술을 마실 때, 이날의 경험을 안줏거리 삼는다. 50만 원이 그렇게나 적은 돈일지 몰랐다고. 서울은 참 살기 힘들 곳이라고. 서울은 참 무서운 곳이라고. 돈을 찍어내듯 벌어도 앞으로 서울살이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