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매일 무거운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이유.
왜 그렇게 매일 가방을 무겁게 들고 다녀요?
어깨 안 아파요? 아플 것 같은데...
언젠가 회사 동료가 내 가방을 들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유정씨, 왜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녀요? 세상에나, 노트북부터 책까지 없는 게 없네요. 매일 이렇게 들고 다니면 어깨 안 아파요?"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나는 지독한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밤마다 어깨가 저려 쉬이 잠들지 못할 때가 많다. 일을 하다가도 어깨가 찌릿찌릿해서 가방 한구석에는 언제나 파스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방 안의 물건들을 집에다 두고 다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도대체 왜?
내게 가방은 단순히 가방의 의미가 아니다. 가방에는 나의 미래가 담겨있다. 내가 오랫동안 염원하던 꿈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나의 미래가 눈부시게 빛나도록 만들어줄, 나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 줄, 소중한 가방에는 어떤 물건들이 담겨 있는지 지금부터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Item , 노트북
내 가방 무게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노트북. 퇴근하고 옆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카페로 달려가서 황급히 노트북을 펼친다. 맥북 특유의 경쾌한 시동음이 들리면 서둘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한글 파일을 연다. 어제 미처 마치지 못한 원고를 연이어 작성한다. 원고를 작성하는 순간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다. 그 누구에게 보여줘도 '이 글 정말 잘 썼는데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글 쓰는데 쏟는다.
그렇게 내가 오늘 목표로 한 원고의 양을 다 채우고 나면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음료를 단숨에 들이킨다. 회사에서부터 퇴근 후 카페에서까지 하루 종일 주인 잘 못 만나 고생만 한 손가락도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준다. 그러면 노트북의 오늘 하루 쓰임은 끝이 난다. 오랜 고민 끝에 구입한 양질의 파우치에 노트북을 고이 넣어 가방 속에 모셔주면 이제 다음날 카페에 올 때까지 노트북을 다시 들여다 볼일은 없다.
두 번째 Item, 책
아침마다 나는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책장에서 오늘 퇴근하고 읽을 책을 고르는 의식 말이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아침 먹을 시간은 없지만, 책을 고르는 시간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고심 끝에 고른 책을 전용 케이스에 고이 넣어 가방에 넣으면 무더운 출근길을 힘차게 걸어갈 에너지가 샘솟는다.
퇴근 후, 노트북으로 원고 작업을 끝내면 곧바로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을 펼친다. 내가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하며 책에 빠져든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눈에 띄면 핸드폰을 집어 들고 '폴더노트'라는 어플에 접속한다. 행복, 인생, 가족, 일, 배움, 여행 등 여러 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내가 마음에 든 문장과 어울리는 폴더를 찾아 글귀를 적어둔다. 글귀를 기록할 때는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 페이지 수까지 상세하게 적어둔다. 훗날 내가 인용할 수도 있으니.
보통 독서는 1시간 정도 하는데,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원고를 쓰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날에는 시간을 2시간으로 늘린다. 그러면 참 신기하게도, 다음날 원고는 물 흐르듯 술술 써진다. 잘 풀리지 않던 부분도 막힘없이 잘 써진다. 그런 날은 내 책이 꼭 베스트셀러가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
원고 작업 후,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책 무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날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멀리서 보면 벽돌 같은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출퇴근길 내내 어깨에서 제발 날 좀 살라달라는 비명이 들려온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려 노력한다. 내가 그 비명에 응답하는 순간, 난 더 이상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그간 모르는 척 부정하고 파스로 억눌렀던 어깨가 더는 내 가방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아서.
세 번째 Item, 플래너
플래너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계획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업무를 할 때도 시간별로 플랜을 세워둔다. 하나를 끝낼 때마다 플래너에 줄을 그으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다. 퇴근 후, 미래를 위한 작업에도 플래너는 필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플래너에 적힌 일들이 모두 끝나지 않으면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유난히 원고 작업이 더뎠다. 회사에서 모처럼 몸을 쓰는 일을 도맡아서 했더니, 슬슬 한기가 밀려오며 두통이 시작됐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노트북을 덮고 집으로 돌아가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뻗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지금 이대로 돌아가면 몸은 편할지 모르겠으나, 마음은 불편하리라는 것을. 결국 달달한 케이크를 입안에 욱여넣으며 내 몸에게 제발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사정했고, 그날 목표로 했던 원고 분량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플래너에 적힌 '원고 작업 마감'이라는 글자 위에 시원하게 빨간 밑줄을 긋는 순간,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고 특히 다리에 힘이 빠진 나는 겨우겨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화장도 미처 지우지 못하고 잠들어 다음날 출근 준비할 시간에 눈을 뜨고야 말았다. 정말 피곤했나 보다.
오늘도 역시 어깨가 아프다. 전날 어깨를 파스로 도배했지만, 나는 어김없이 가방에 미래를 위한 아이템들을 챙겨 담는다. 벽돌처럼 무거운 노트북과 충전기, 아침부터 고심 끝에 고른 책, 오늘 내가 해내야만 하는 미션들로 가득한 플래너까지. 또, 체력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각종 간식과 텀블러까지 모두 넣고 나면 출근 준비 완료. 출근길 내 어깨는 제발 좀 무게를 줄여달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애써 무시하고 오늘도 회사 그리고 퇴근 후의 작업을 마무리하러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