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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Aug 30. 2021

경상도 사투리가 뭐 어때서?

누가 뭐래도 꿋꿋하게 사투리 쓰며 살겠습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의 발목을 잡은 건 사투리였다. 22년간 지방에 살며, 사투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했던 나. 하지만 서울에 와서 갑작스럽게 22년 절친 사투리와 이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친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기에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고 들을 일이 많았기에 더더욱 말투를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경상도 사투리는 유달리 억양이 세다. 자칫 잘못 들으면 꼭 불같이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린다. 때문에 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로부터 오해를 자주 받았다. 난 그냥 나의 의견을 조리있게 말한 것뿐인데, 동료들은 내게 "유정씨, 이거 그렇게 예민한 사안 아니니까 화내지 말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억울했지만 무어라 대꾸하지 못했다. 사투리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서울말을 쓰려고 노력했다. 


퇴근 후에는 일부러 좋아하지도 않는 9시 뉴스를 보며, 아나운서의 말투를 눈여겨보았다. 또, 서울에서 태어난 친구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강한 어조를 지워나갔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화가 나면 어김없이 사투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해 상사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해야 할 때는 정말이지 난감할 정도로 사투리의 향연이 벌어졌다. 너무 당황해서인지, 속사포로 사투리 랩을 시전하고야 말았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으나, 다행인 건 내게 보고를 받은 상사도 같은 경상도 출신이었고 사투리로 점철된 나의 엉망진창 보고를 몽땅 다 알아들었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보고가 끝난 후, 그녀는 나를 따로 불러 "유정씨, 경상도 사람치고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아니었네요. 당황하니까 사투리부터 먼저 튀어나오네요. 근데 나도 이해해요. 나도 갑자기 놀러거나 화가 나거나 마음이 급해지면 내가 어떻게 조절할 새도 없이 사투리가 쏟아지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온몸을 휘감았던 긴장과 당혹스러움이 일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날 밤, 마침 엄마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기에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현재 서울에 살고 계시는 외삼촌 이야기를 해주셨다. 외삼촌께서는 대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오셔서 근 30년 가까이를 거주하셨다. 일반 회사원으로 시작하여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고, 결국엔 회사까지 설립한 입지전적 인물로 우리 가족의 자랑거리로 늘 입에 오르는 분이다.

그런 외삼촌께 언젠가 엄마가 "오빠야는 서울에 올라갔는데 왜 사투리를 안고치노?"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외삼촌께서는 즉각 "야야~ 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말 쓰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나?"라고 시원하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다. 


난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고 무려 22년을 살았다. 이런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서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말(표준어)을 배웠으며 수십 년간 서울말을 써왔기에 자연스럽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명확하고 쉬운 이치를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게 되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투리가 튀어나오면 나오는 대로. 어설픈 서울말이 나오면 또 그런대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의식하지 않기 시작하니 참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도 더 이상 내게 말에 대한 지적을 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난 친척분 결혼식장에 갔다가 외삼촌을 만났다. 외삼촌께서는 여전히 거침없이 사투리를 쓰셨고 서울 사람들이 즐비한 결혼식장 뷔페에서 우린 거리낌 없이 경상도 사투리의 축제를 열었다. 외삼촌의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니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정겹던지. 바쁘다는 핑계로 늘 나를 챙겨주시는 외삼촌께 연락도 자주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은 외삼촌께 문자라도 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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