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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Sep 07. 2021

유튜브가 쏘아 올린 작은 기적

평생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4월의 어느 날, 한동안 바빠서 들여다 보지 못했던 유튜브 어플을 켰다. 그러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장 상단에 인간극장-민들레 국수집편이 떠 있었다. 평소 인간극장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별 생각 없이 그 영상을 클릭했었다. 거의 10년 전의 영상이었기에 보다가 화질이 안 좋거나 재미가 없으면 곧바로 꺼 버려야지라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1분이 지나도,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나는 도저히 정지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잃고 정처없이 거리를 떠돌며, 하루에 한끼조차 먹기 어려운 노숙자들에게 정성이 듬뿍 담긴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는 민들레국수집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지원도 일체 받지 않고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보내준 후원금과 물품만으로 하루에도 족히 2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밥을 내어준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힘들다는 내색 없이 묵묵히 오랫동안 인천 화수동 골목에서 나눔을 이어가는 민들레국수집 대표님을 보고 뭐라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의 큰 감명을 받았다. 또, 나도 그 뜻깊은 활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할 수 있다면 직접 인천으로 가서 배식 봉사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게 쿠팡 로켓배송이었다. 로켓 배송을 이용하면 클릭 한 번으로 식재료부터 각종 생활용품을 기부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냉큼 2900원을 결제하여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했고, 당분을 한가득 보충해줄 초코파이 7박스와 카스타드 2박스를 결제하여 그곳으로 보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쿠팡으로부터 '민들레식당에 물품을 안전하게 잘 배송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로켓 배송 기사님이 찍어주신 인증샷을 보는데, 마음이 괜스레 따뜻해졌다. 보잘것없는 작은 정성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내가 보낸 간식들을 먹고 조금의 허기라도 달랠 생각을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광고나 책에서 "나누면 행복해집니다"라는 문구를 봤을 때, 사실 심드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누는데 어떻게 행복해질까? 저건 후원을 독려하기 위한 거짓말임이 틀림 없어.'라고 생각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눔을 시작하니 정말로 광고 캠페인 속 문구처럼 내가 행복해졌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놀랍게도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절약"이다. 가끔 비싼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민들레국수집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거 한 잔이면 과자라도 한 박스 더 보낼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싼 커피를 먹고 싶던 욕구가 뚝 떨어져 버린다. 이런 식으로 아낀 돈을 모아 입맛 떨어지기 쉬운 여름, 맛있는 호박전 좀 드시라고 호박 35개를 로켓배송으로 보냈다. 고작 35개로 얼마나 많은 전을 하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결제를 했던 기억이 있다. 

또 어느 날은 민들레국수집 사장님께서 개인 페이스북에 어떤 노숙자분의 신발 사진을 올리신 것을 봤다. 세상에 얼마나 낡았는지 밑창도 다 떨어져 있었고 신발 앞코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새벽녘에는 여전히 추운데, 그 신발을 신고 어떻게 밖에서 주무실지 걱정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이키로 달려가 좋은 운동화를 사서 보내고 싶은데 그땐 나도 지출할 곳이 많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에 좋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평이 괜찮은 저렴한 운동화 2개를 구입하여 보냈다. 보내면서도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민들레국수집 대표님께 따로 문자를 보냈다. "값비싸고 좋은 운동화는 아니지만, 신발이 떨어진 노숙자분들께 작게나마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대표님으로부터 "감사합니다."는 답을 받았고 페이스북에 내가 구입해서 보낸 운동화를 나눠주시는 사진이 업로드된 것을 확인했다. 비싼 신발은 아니지만, 다 떨어진 신발 대신 내가 보낸 운동화를 신고 추운 새벽도 무사히 잘 넘겨낼 분을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찼다. 나눌수록 내가 더 기쁘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내가 유튜브 앱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최근 엄마에게도 연락드려 함께 기부를 시작해보자고 권유했다. 엄마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겠다며 긍정적인 답을 주셨다. 가능한다면 우리 엄마를 시작으로 다른 주변 사람들도 민들레국수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괜찮으니 나눔을 실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들 나눔의 참된 기쁨을 알게 되기를 손꼽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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