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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Sep 07. 2022

유난히 내가 미워지는 날, 그런 날 있잖아요.

유난히 내가 미워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도 속이 좁은 것일까. 누군가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예리하게 발견하는 것일까. 장난스럽게 건넨 말 한마디에 날을 세워 뾰족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둥글둥글하지 못한 내가, 늘 상념에 사로잡히는 내가, 혼자 생각의 집을 짓고 부수는 내가,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하는 내가 미웠다.
 
퇴근 무렵, 나를 향한 미움의 강도는 절정에 이르렀다.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냉기가 감도는 맥주 캔을 꺼내 벌컥 마시고 싶었다. 그런 다음, 온종일 나를 옥죄던 원피스를 냅다 벗어 던지고 매트리스 위에 드러눕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고, 뻗어버리고 싶었다. 오늘의 모든 번뇌를 맥주와 수면의 힘을 빌려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갈 수 없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글쓰기 모임에 참석해야만 했으니까. 사실 모임을 함께 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수십 번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내가 모임을 기획했고, 만들었으며, 운영까지 하고 있는데 고작 나의 심리적인 문제를 이유로 빠질 수는 없었다. 그건 모임장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퇴근 준비를 하면서 잠깐 인스타그램을 살폈다. 오늘따라 피드 상단에 함께 모임에서 글을 쓰는 분의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흥미로워 살펴보니, 마침 내가 늘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에 다녀오셨다는 내용이었다. 
 
일순간, 그곳에서 있었던 좋았던 추억들이 나를 향한 미운 감정들을 억눌러 버렸다. 아니, 사실은 스토리지북앤필름에 가면, 오늘의 나를 향한 미움을 조금은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6개월간 퇴근 후, 밤을 새워가며, 지독한 위경련에 시달리면서까지 공들여 쓴 내 책이 있는 곳이니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 책이 있는 곳이니까. 그곳에 가면 나에 대한 미움보다, 고맙고 대견한 마음이 더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 퇴근 후 버스정류장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간발의 차로 역삼역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평소 항상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인데, 오늘따라 무슨 연유에선지 한산했다. 심지어 앉을 자리가 있을 정도로. 분홍색 임산부석을 피하고, 노란색 노약자석까지 지나친 뒤, 오늘의 하늘처럼 맑은 푸른색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마음과는 반대로 유난히 쾌청한 가을의 하늘을 눈에 담으며 10분쯤 갔을까. 곧이어 귓가에 역삼역 정류장에 도착함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어쩐지 가뿐한 마음으로 하차 태그를 하고 지하철로의 환승을 위해 역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 그 버스처럼 지하철도 꽤 한산했다. 보통 3번쯤 만원이 되어버린 열차를 보내야, 겨우 내 몸뚱어리 하나 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앞서 말했듯, 여유가 있었다. 조금의 기다림도 없이 단 한 번 만에 지하철에 올라 강남까지 단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점가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델리 만주, 베이글, 도넛 냄새를 코로 즐기며 역을 나와 망설임 없이 스토리지북앤필름으로 향했다. 
 
2달 만이었다. 강남에 밥 먹듯 자주 나오면서도, 이곳을 들리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새로운 독립출판물을 얼른 완성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서였다. 그동안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열린 워크숍을 들으며 새 작업물을 준비했었는데, 그때마다 ‘저, 꼭 이번 달에는 출간할 겁니다!’라며 자랑스럽게 선언했었는데, 결론적으로 그 책은 아직도 작업 중이니까. 여전히 내 13인치 맥북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차마 갈 수 없었다. 내가 무척 애정을 갖고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님들의 독립출판물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이런저런 사항들을 묻는 1층의 스태프에게 짧게 인사를 건넨 뒤, 곧장 3층 서점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하게도 내 책이 가장 눈에 띄었다. ‘역시, 표지 컬러를 형광기가 감도는 노란색으로 하길 잘했어.’라고 혼자 뿌듯해하며, 잠시 내 책을 살폈다.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샘플 책이 손때가 묻어 있었다. 표지는 조금 휘어져 있었고, 내지 역시 누군가 넘겨본 흔적이 역력했다. 짜릿했다. 기뻤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유도 없이 책을 보며 바보같이 웃어젖히는 나를 정신이 약간 반쯤 나간 사람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사람들의 외면을 받은 것 같지는 않은, 많은 이들이 넘겨본 흔적이 역력한 책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작가님의 책을 골라들었다. 북페어 때, 내가 운영하고 있는 부스 근처에 계셨지만 용기가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작가님이셨다. 워낙 필력이 좋으시기도 하고, 주제 역시 잘 선정하셔서, 언젠가 꼭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그 작가님의 책을 홀린 듯이 골라 카운터로 다가간 것이다.      




그런데, 결제를 해주러 나온 분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에 익숙한 스트라이프 티와 모자를 쓴 사람. 바로 ‘마이크’ 사장님이셨다. 마 사장님은 내가 포기할 뻔했던 ‘엄마, 서울은 왜 이래?’라는 독립출판물을 끝내 세상에 빛을 보게 만들어 주신 감사한 분이다. 내게 에세이 쓰는 법을 알려주신 이성혁 작가님의 추천으로 마 사장님의 독립출판 워크숍을 수강하게 됐고, 결국 나는 거의 일주일 만에 윤문 작업을 거쳐 최종 원고를 완성하고, 가제본 과정을 거쳐 결국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연신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시지만, 정말 그 워크숍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페어에도 참여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감사한 분을 우연히 다시 만나니, 너무 기뻤다. 서둘러 결제를 마치고, 사장님과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어쩐지 사장님은 조금 수척해 지신 느낌이었으나,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어주시기에 잠시 내 이야기를 꺼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책방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사장님처럼 잘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고향, 경주에 책방을 만들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그러나 책방 운영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고, 요즘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월세나 제때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조심스럽게 토로했다.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계시던 사장님은 갑자기 내 눈을 주시하시며 말씀하셨다. 

“다른 곳에서 아끼면 돼요. 직접 밥해서 먹고,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면 돼요.”
 
 “그리고, 작가님 뭐가 걱정이에요. 제가 봤잖아요. 
 작가님 정도 기획력이면 다양한 워크숍도 여실 수 있을 테고, 
 책방 운영도 무리 없이 하실 수 있어요. 분명 해내실 수 있어요. 
 경주에서 운영하시면 수요도 분명 있을 겁니다.” 
 
고민이 뚝뚝 묻어나는 나의 질문에 내려진 마이크 사장님의 확답. 당신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 그리고 격려. 사장님의 확신이 가득 찬 답변에, 지금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내려가 책방을 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생겼다. 가슴이 뛰었다. 벅찼다. 사장님은 느끼셨을지 모르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감사함과 감동, 그리고 벅차오름이 그렇게 나의 온몸을 감쌌다. 
 
대화의 말미에, 나는 사장님께 멀지 않은 날에 사장님께서 직접 진행하시는 ‘책방 운영’과 관련된 워크숍에 참가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항상 강남점에서 열지 않아 아쉽다고 마음을 전했더니, 그렇다면 강남점에서도 열어보겠노라 웃으며 답해주셨다.      


하지만, 이 끓어오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스토리지북앤필름 후암점에서 열리는 ‘작은 책방,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마 사장님의 원데이 워크숍에 신청했다. 카톡으로 신청을 하고, 비용을 입금하고, 최종 참가 확정을 받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그 일련의 순간들이 내게는 희열과 설렘 그 자체였다. 조금씩 내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그런 설렘, 막연하게 느껴지던 목표에 다가가는 느낌, 끝내 나는 지난 5년간 내가 간절하게 바라던 목표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나의 목표를 그저 ‘이상’이라 칭하며 곱지 않게 보는 이들도 많다. 나는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결국 금전적인 부분에서 무너질 것이라며 말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럼 나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어떡해서든 해 보는 게 맞는 거 아니야?”라고 응수하며 그들의 걱정을 나의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덮어버린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어코, 기필코 해낼 것이다. 공들여 만든 내 책도,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책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누군가의 선택의 받게 할 것이다. 책과 함께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마음이 불편할 때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 아이들을 위한 책이 가득한 공간. 책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멀지 않은 날에, 반드시, 꼭,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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