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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Sep 13. 2022

#6 당신이라면 기꺼이


<소설> #6 당신이라면 기꺼이



전세 사기를 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오갈 데도 없고,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그였다. 그는 울먹이는 내게, 젖은 눈으로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내게 "괜찮다."라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털터리인 내게 그는 집과 옷과 돈을 내주었다. 그리고 용기를 주었다. 이 모진 시간들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이라고.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점점 희미해질 것이라고. 그는 내게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주문처럼 이렇게 말해주었다.


죽을 생각을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린 나를 구원해 준 그와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통장에 모아둔 돈도 한 푼 없는 나를, 당장 내일의 핸드폰 요금을 낼 돈도 없는 내게 그는 자신이 10년간 모아둔 돈을 내밀며 결혼을 청했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도 괜찮냐고 애써 울음을 참으며 물으니, 그는 말없이 나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는 거창한 결혼식 대신,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로 했다. 오름 위에서 미리 준비해 간 하얀 원피스와 남색 재킷을 입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다시 그 손을 잡고 오름을 내려올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양가 집안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 험난할 것이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함께라면 기꺼이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설령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만류하며 나를 붙잡더라도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갈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그의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는 내게 선물과도 같은 사람이며, 

그가 없는 삶은 지금도 앞으로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나' 다우며, 

그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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