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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07. 2022

갑자기 만년필 예찬론자?

최근 엄청난 상실감과 공허함으로 인해 두통까지 몰려오던 시기가 있었다. 수액을 맞고, 하루종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던 두통이 만년필에 온 신경을 쏟게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3개의 만년필을 품안에 들였다. 몽블랑, 펠리칸 등 고가의 만년필도 나를 유혹했지만, 입문자가 어디 그런 고가의 만년필을 활용이나 잘할 수 있을까 싶어 저가형 만년필 위주로 구매했다.


왼쪽부터 파이롯트 카쿠노, 프레라 라미 사파리, 스튜디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라미 사파리에 이어 라미스튜디오, 파이롯트 프레라와 카쿠노까지. 특히 파이롯트 카쿠노는 일본의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제품으로 가격이 만 원 초반대였다. 쿠팡에서 구입하니 카트리지까지 포함해서 만 이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다. 워낙 가격이 저렴해서 사실 필기감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걸. 저렴한 만년필 특유의 종이 긁힘 현상도 전혀 없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글이 써진다. 또 립감도 상당했다. 개인적으로는 3만 원 초·중반대의 라미 사파리보다 파이롯트 카쿠노 제품이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닙에는 귀여운 표정까지 새겨져 있었다. 과연 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제품답다. 
 

라미 스튜디오 임페리얼 블루

현재 소유하고 있는 만년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제품은 단연 '라미 스튜디오'다. 각인까지 해서 구입한 것으로 영롱한 바디 색깔이 자꾸만 손이 가게 한다. 필기감도 두말할 것 없다. 물 흐르듯 잘 써지고, 날카롭게 긁히는 느낌도 전혀 없다. 그립감도 좋다. 자꾸만 쥐고 무엇이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무게가 꽤나 무겁다. 오래 사용하면 손가락이 피로하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 워낙 많기 때문에 매일 들고 다니며 애용 중이다. 


이제 막 발을 들인 만년필의 세계. 닙 종류도 다양하고, 만년필을 출시하는 회사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인터넷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제품력이 좋은 중국 회사 제품들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또 상당한 고가임에도 몽블랑을 여러 자루 갖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몽블랑 제품은 가장 저렴한 모델도 50만 원 선이던데, 언젠가 나도 스스로에게 대견한 일이 있다고 내게 선물해 주려 한다. 

 

만년필의 세계에 빠져든 이후로,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끼던 책의 구절들을 필사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만년필 특유의 소리를 들으면서, 또 가죽 필통 안에 나란히 누워있는 만년필의 자태를 유유히 감상하면서 말이다. 이제 곧 동생이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선물해 준 세일러 만년필이 도착한다. 영롱한 보랏빛을 띄고 있는 제품인데, 필기감이 유난히 좋다고 하여 더욱 기대된다. (빨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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