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지구를 위한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애석하게도 난 환경 보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설거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집에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머그컵이 주방에 널려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컵을 썼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젓가락도 수저통에 한가득 꽂혀 있었지만, 일일이 헹구기가 귀찮아 나무젓가락을 썼다. 덕분에 우리 집 일회용 쓰레기 전용 봉투는 항상 자신의 용량을 초과하여 매우 위태롭게 쓰레기들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누가 툭 하고 치면 곧바로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회용품이 주는 편리함에 한껏 취해있었다. 설거지 할 필요도 없이 물로 그냥 헹궈 버리면 되니깐. 이렇게 간편한데, 어떻게 이런걸 쓰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원고 작업을 하기 위해 들린 스타벅스에서 어느 커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들의 테이블 위에는 사이렌 로고가 드려진 일회용 컵 대신 베이지 색의 텀블러 2개가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의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며 제로웨이스트 챌린지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엿들어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미 들어버렸으니 그들의 대화를 살짝 공개해도 되겠지.
여자 : (텀블러를 만지작 거리며) 오빠, 우리 제로웨이스트 챌린지 시작한지 2주 째인데, 어때?
남자 :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아, 솔직히 좀 힘들긴 해. 특히 카페에서 텀블러에 라떼 담아 마시면 냄새가 베여서 그 뒤로는 무얼 마셔도 우유 비린내가 나더라고.
여자 :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그건 오빠가 바로 안 씻어서 그래. 마시고 바로 씻으면 냄새 하나도 안나거든?
남자 : (멋쩍은 표정으로) 아 그래? 알겠어. 이젠 바로 씻을게. 그나저나 나 어젯밤에는 엄마가 떡볶이 먹고 싶다고 그래서 집에 있는 락앤락스 반찬통 들고 가서 담아왔어. 주인 아줌마가 나보고 왜 통을 이렇게 직접 들고 왔냐고 물으시길래, 일회용품 쓰면 편하고 좋지만 쓰레기가 생기기도 하고 통에 담아 먹는게 더 맛있어요. 라고 하니 웃으시며 떡볶이만 샀는데 덤으로 오징어 튀김까지 넣어주셨어. 대박이지.
여자 : 오오오, 대박이네!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이러했다. 몰래 엿듣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여 정말 미안하지만 대화 내용이 흥미로워 차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은 대화를 마치고 잠시 더 본인들의 일에 열중하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지만 그들의 대화는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제로웨이스트 챌린지였다.
곧장 네이버에 검색을 하니 각종 제로웨이스트 포스팅이 쏟아졌다. 제로웨이스트는 무엇인지, 이를 통해 얼마나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갖가지 정보가 펼쳐졌다. 내용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놀라웠던 건 평소 내가 자주 쓰는 용품들이 얼마나 환경에 유해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기름때까지 말끔하게 제거해주어 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아크릴 수세미를 사용할 경우, 설거지를 할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이 나와 물로 흘러 들어가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적은 양의 세제로도 각종 찌든 때가 모두 닦였기에 친환경 수세미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나의 큰 오해였다. 지구를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아크릴 수세미외에도 칫솔, 샴푸, 린스, 빨대 등 환경을 오염시키는 존재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더 아찔했던 건 블로그나 뉴스 기사에서 언급되는 모든 제품들을 내가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회용품 그리고 각종 물품들의 편리함에 취해 나는 지구에게 엄청난 가혹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도 제로웨이스트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제로웨이스트까지는 못하더라도 less waste라도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헬로네이처에서 제로웨이스트 키트를 구매했다. 또한 안 쓰던 에코백을 꺼내어 마트에 갈 때 꼭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카페에 갈 때면 들고 간 텀블러를 무조건 사용했다.
하지만 카페에서의 텀블러 사용에 변수가 생겼다. 원고 작업 및 사이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스타벅스에 자주 가는데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당분간 개인 텀블러에 음료 제공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개인 카페들도 텀블러 사용이 어렵다고 말하는 곳이 많았다. 결국 카페에서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어렵게 되었지만 그래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은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고 천연 비누를 사용하고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 사용을 촉진하는 배달 음식 섭취를 자제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재활용 분리수거를 해도 될 정도로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 이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또 배달 음식 섭취를 자제하니 식비까지 적어져 지갑 사정이 넉넉해졌다. 평생을 살아야 하는 소중한 지구도 지키고, 내 지갑도 지키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무심코 누군가 건넨 나무 젓가락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러라도 의식하면서 조금씩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간다면, 습관을 들인다면 우리의 지구는 지금보다 조금 더 영롱한 푸른빛을 뽐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