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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08. 2023

내겐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곁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어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몹시도 간절하다. 인생의 큰 프로젝트를 목전에 두고 이를 누구보다 잘 치러내기 위해 용을 쓰느라 요즘은 도무지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 예전처럼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세월이 흘러 고유의 빳빳함을 사라지고 어느새 내 몸의 자잘한 곡선이 그대로 묻어나는 잠옷을 입은 채로, 머리맡에 고이 놓아둔 책을 읽고 싶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활자에 눈을 고정한 채로. 은은하게 풍겨오는 종이 냄새를 맡으며.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점심시간을 간신히 쪼개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함께 글을 쓰고, 취미를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소중한 분께 선물받은 신형철 문학 평론가님의 책. 월요일부터 읽기 시작해 절반가량 읽었다. 사실 마지막이 궁금해 속도를 높이고 싶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기에 필사하기 바빠 도무지 읽는 속도를 높일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좋은 문장들을 혹여라도 놓칠세라 남김없이 필사하고, 또 나만의 언어로 해석하기도 하며 매일 점심 식사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평론가님의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책의 메인 테마는 슬픔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누군가는 업무 시간에 못다한 연락을 주고받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양치를 하는 등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나만의 집중력으로 책을 읽어내려간다. 20분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나는 진실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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