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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22. 2023

필사를 한다는 건, 나를 위한다는 것


매일 아침 딱 20분.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필사에만 몰두한다. 멋스러운 가죽 케이스에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끌리는 만년필을 하나 꺼내들고, 시를 따라 쓰고, 영어 문장을 받아쓰고, 책 속의 기억에 남는 문장을 종이 위에 남긴다. 


만년필 촉이 종이 위에 부딪히며 나는 특유의 소리, 종이와 만난 잉크가 자신의 영역을 넓혀 하나의 글자로 완성되는 모습, 손에 슬며시 묻어나는 잉크. 이 모든 것들이 필사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하루에 딱 20분, 필사의 시간을 통해 나는 수만 가지 번뇌로 고통받는 나를 잠시 행복하게, 기쁘게, 웃게 해 줄 수 있다. 이렇게 나를 위한 시간이 있기에 나는 반복되는 험난한 하루를 기꺼이 마주할 수 있다. 


필사를 시작으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순간을 점점 더 늘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말마다 경주와 서울을 오고가는 일정 속에서도 하루에 1시간은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눈에 담고, 마음에 와닿은 구절을 입으로 되뇐다. 퇴근길 버스를 타는 대신, 두 발로 어렴풋이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닌다. 집으로 가는 최단 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한참을 돌아, 부츠를 신은 발이 아우성을 칠 때까지 걷고 또 걸어 퇴근길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사랑해야 함을 미처 몰랐다. 


그동안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사랑을 마주해야 하는 지금, 

그 사람을 더없이 완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더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위해주는 일부터

선행돼야 함을 이제는 선명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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