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전 생에 걸쳐 아마도 다시는 없을 커다란 이슈를 앞두고,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나의 모자람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날도 숱하게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아지고 달라져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다. 사실은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자란 내 모습대로 새로운 사람을 내 삶 속으로 들여 평생을 함께 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상대는 나의 부족함을 메우느라 매 순간 허덕이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잠시 짬을 내어 나의 한계를 빈 종이에 적어내렸다. 미련한 짓임을 알면서도 빈 종이를 메워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한 사실 바로 이것이었다. 과연 나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요리부터, 돈 모으는 일, 그리고 어른을 대하는 매너까지. 무엇 하나 역부족 그 자체였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리고 기가 막혔다. 나름대로 짧지 않은 생을 살아왔건만, 커다란 종이 한 장을 꽉 채울 정도로 단점이 많은 사람이었다니 말이다.
커다란 우울감과 슬픔에 휩싸이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나 하나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책망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 모두가 나처럼 좌절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자신의 부족하고 모난 부분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나친 자기 혐오감에 빠지지 않고, 달라질 내일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난 모습들로만 가득 찬 종이를 있는 힘껏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아무렇게나 사용하던 볼펜 대신, 고이고이 아끼던 값비싼 만년필을 꺼내 다시금 종이를 채워나갔다. 이번엔 내가 나아지고 달라질 수 있는 의지를 잉크에 가득 담아 종이를 적셨다. 만년필 촉이 종이와 맞닿으면서, 검은 잉크가 점점 퍼져 하나의 활자로 변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며 나는 나를 책망하는 대신,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슴 깊숙한 곳에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