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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y 02. 2023

아침을 여는 필사

오늘도 필사로 아침을 열었다. 가방 깊숙한 곳에서 고이 모셔둔 만년필을 꺼내,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좋아하는 구절들을 노트에 옮겼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형광펜으로 그어진 명문장들을, 공들여 노트에 담았다. 만년필의 촉이 노트에 닿을 때, 그 순간 들려오는 소리는 나만이 아는 기쁨이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하얀 종이에 물들어 검은 글자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 좋아하는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며 마음에도 새기는 작업. 매일 아침 필사를 할 때면, 나의 예민함도, 불안함도, 슬픔도 모두 달아난다. 


오늘 아침에는 검은 활자들로 가득 찬 나의 필사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살폈다. 아끼는 문장들로 빼곡하게 메워진 노트. 잉크를 머금고 '바스락'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노트. 보잘것없는 노트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들을 담아내며 더 멋스러워지는 것을 보고 자꾸만 만족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필사로 여는 아침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매일 아침 만년필 캡을 돌려서 열고 미색의 노트에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담아내는 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오늘도 그러했듯, 내일도 필사로 아침을 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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