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좋다는 아빠의 승낙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이제 홀로 고향, 경주로 향하지 않는다. 나의 경주행에는 언제나 동행자가 있다. 바로 '예비 신랑'이자 우리 부모님의 '예비 사위'이다.
7년간 함께한 연인이자, 앞으로 나와 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함께 걸어갈 사람. 그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장거리 연애, 적지 않은 나이 차를 모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향한 존경심이 단단히 마음속에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난 더더욱 그랬다. 인생의 선배이자, 또 든든한 남자친구이자, 오빠이기도 한 그를 가슴 깊이 존경했다. 아니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는 더욱더 존경스러운 면모를 내게 보여주고 있다. 나를 의식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는 그 자체로 정말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나보다 더 우리 부모님께 잘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더욱 샘솟는다. 특히 우리 아빠에게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엄마가 모처럼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오빠는 내게 말하지 않고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주었다. 내게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를 통해 그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내가 그에게 곧장 말했다.
"내가 엄마 용돈 챙겨드려서, 괜찮은데~"
"자기는 자기가 한 거고, 나는 내가 한 거고."
"나도 어머님 용돈 챙겨드리고 싶어~모처럼 가셨는데 재미있게 놀다 오시면 좋잖아"
그 말을 할 때의 예비 신랑의 말투와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말의 가식도 없는 표정. 거기서 묻어 나오는 진심. 자신의 예비 장모님이자, 우리 엄마를 정말로 존경하고 사랑하기에 사위로서 꼭 챙겨드리고 싶다는 그 마음. 그의 따뜻한 마음이, 진실한 마음이 말투와 표정을 통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됐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고맙고, 또 고마워서. 우리 부모님을 자신의 부모님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세심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그가 고맙고 또 고마워서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다. 특히 엄마는 유난히 더. 얼마 전, 예비 신랑의 생일 때 엄마는 꽤 큰돈을 보내주며 오빠에게 마음에 드는 좋은 셔츠를 사 입으라고 했다. 당신이 구매해서 선물로 보내려다가, 그냥 사위 본인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서 입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 판단했을 터. 예비 장모님께 큰 선물을 받은 예비 신랑의 입가에서는 좀처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침 나도 함께 있었기에, 우린 곧장 쇼핑몰로 가서 셔츠를 샀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며, 소재도 좋고, 마감까지 좋은 셔츠로 말이다.
엄마가 보내준 현금으로 결제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자기 이제 이거 오래 입어야겠네? 3년은 입어 최소한~"
그러자 그는 소리 높여 말했다.
"3년? 아니 나 10년 입을 건데? 아들한테 물려줄 건데?"
진심보다 더 진심인 그의 답변에 나도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그런 나를 그는 다정하게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