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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Aug 10. 2023

필사로 하루를 열고 닫다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는 요즘이다. 수면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 일과 결혼 준비를 병행해야 하는 데다가, 혹독한 다이어트까지 해야 하는 통에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날씨라도 도와주면 좋으련만.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폭염 주의 재난문자. 그리고 이젠 장마까지 시작됐다. 오늘도 창밖에서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다.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가라앉는 터라,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항상 챙겨 다니는 아끼던 볼펜을 꺼내 필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고, 인형이 되기를 끝끝내 거부하며 자주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나혜석 시인의 작품을 필사하게 됐다. 한 자 한 자 종이에 옮겨 담으며, 백색의 종이가 검은 활자들로 가득 메워지는 것을 보며, 머릿속을 에워싼 잡념들을 차근차근 떨쳐냈다. 내 마음을 잠식하고 있는 불필요한 감정마저도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삼십분이 넘도록 필사에 집중했다. 나혜석 시인의 시를 시작으로, 어린 왕자 원서의 한 페이지를 써내렸고, 끝으로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글귀들을 옮겨 담는 것으로 아침의 필사를 마무리했다. 


필사를 끝내고, 가만히 눈을 감고 나의 마음을 돌아보니...확실히 시작 전보다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뒤틀렸던 입술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았고, 일그러졌던 미간도 곧게 펴졌다. 평온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잔뜩 쌓인 업무들을 처리하고... 

결혼 관련 이슈들을 해결하기 시작하면, 또 몸과 마음이 지칠 것이다.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 


그럼 난 다시 시집과 책을 끌어안고, 

눈에 담고, 글로 옮기며 다시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고단했던 하루를 닫을 것이다. 

가장 평온한 상태로, 살포시 미소를 머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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