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Aug 11. 2023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집

결혼식 3개월 전,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암담했다. 막막했다. 결혼식이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우린 집이 없었다. 강남에 있는 나의 원룸, 그리고 천안에 있는 예비 신랑의 원룸은 임시 거처에 불과했었으니까. 예식 날짜는 다가오는 데, 함께 살 만한 보금자리는 없어 우리의 스트레스는 하루가 다르게 더해졌다. 늘 생글생글 잘 웃던 예비 신랑도, 집 문제 탓에 표정이 어두워질 때가 많았다.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는 나. 출퇴근이 용이해야 된다는 생각에 우린 수원, 용인 등의 지역에서 열심히 집을 찾아봤다. 그러나 가격대가 괜찮으면 집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빌라와 오피스텔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고 대단지 아파트만 살피다 보니, 우리가 매입 가능한 가격대면 최소 30년이 넘어가는 곳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전체 수리를 해서 살면 되긴 했다. 그러나, 예비 신랑도 나도 가급적이면 지은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보는 아파트마다 성에 안 차고, 성에 차면 가격이 용납 불가한 수준이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예비 신랑의 근무지인 천안에 집을 사자고. 물론 강남에서 일하는 내가 출퇴근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또 고속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섰다. 확실히 천안으로 내려오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집 컨디션이 압도적으로 좋아졌다. 대단지 아파트, 지은지 채 7년이 되지 않은 곳들이 즐비했다. 대출도 우리가 감당 가능한 범주에서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또 맞벌이를 하면 그 정도쯤이야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겠다는 판단이 섰다.  확신에 확신이 더해지자, 나와 남편은 속전속결로 "천안에 아파트 사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예산을 정하고,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 괜찮은 매물들을 탐색했다. 그중에서 브랜드 아파트들만 추려서, 비교 분석 끝에 결국 역세권 대단지 아파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실 역에서 좀 거리가 있는 아파트가 마음에 쏙 들었다. 회사 보유분을 푼 거라서 손 볼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으나, 거리가 문제였다. 아직 차가 없는 내가 살기에는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곳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으나, 예비 신랑과 난 깔끔하게 포기하고 역세권 아파트를 선택해 가계약금을 걸었다. 


살면서 이렇게 큰 소비를 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예비 신랑. 그는 가계약금을 보내고 이어 본 계약금까지 보내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원금과 이자를 읊으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아주 단호하게.


"자기야, 우린 할 수 있어! 못할 게 뭐 있어. 둘이 버는 데, 내가 더 열심히 일해볼게. 나만 믿어"


나의 호언장담에 시종일관 걱정에 휩싸여 있었던 그가, 환하게 웃었다. 

돌아온 그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계약금 이체 내역을 확인하던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이젠 소비 요정 타이틀은 완전히 내려놔야 해"


일순간 위시 리스트에 있었던 모든 아이템들이 스쳐갔으나, 난 아주 큰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당연하지"


힘차게 대답했으니, 그와의 약속을 이행할 차례다. 오늘은 그간의 소비 패턴을 분석했다. 역시, 스트레스성 소비가 많았다. 이것만 줄여도, 아껴도, 원금과 이자 갚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을듯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젠 지독한 스트레스에 휩싸일 때면, 대책 없이 쇼핑몰 앱부터 켜는 것이 아닌, 다른 해결 방법을 모색할 시간이다. 오늘 퇴근 이후의 남은 시간은 모두 새로운 해결법을 탐색하는 데 몽땅 쏟아부어야겠다. 그것만이 내가 소비 요정을 완전히 졸업하는 유일한 방책일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인생 소설을 만나다 양귀자 - 모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