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Dec 26. 2023

나를 위로하는 취미 '필사'

신혼집을 서울이 아닌 천안에 구하면서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모든 채비를 마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 다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8시 20분쯤이 된다. 아침 시간이 여유가 생기니 매일 하던 필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서울에 살 땐 정각에 딱 맞춰 출근하느라, 아침에 여유롭게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담아낼 시간이 부족했다. 매번 그 점이 아쉬웠는데, 천안으로 이사를 가니 출근 시간이 앞당겨져 여유롭게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을 머금은 채 필사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이른 오전 8시에 회사에 도착했다. 주말 내내 먼지가 잔뜩 쌓인 책상을 닦고, 필사용 어린왕자 원서를 펼쳐들었다. 적힌 문장을 필사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 작업이 끝나자 읽고 있던 에세이를 펼쳐 다시 30분 정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골라 노트에 옮겼다. 만년필로 정성 들여 옮기다 보니 어느새 직원들이 하나 둘씩 출근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그간 필사했던 내용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주옥같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영원히 나만 알고 싶은 소중한 문장들. 그런 문장들을 내 손으로 옮기고 또 기록해서 더 귀하게 여겨졌다. 작년 초순부터 본격적으로 필사를 시작한 후, 생각보다 꽤 많은 필사 노트들이 생겨났다. 만년필 잉크로 만들어낸 활자들이 빼곡하게 담긴 나의 필사 노트들. 어쩐지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외로움이 몰려올 때, 이 노트들을 열어보면 평온이 찾아온다. 흔들리지 않게, 위태롭지 않게 나를 잡아주는 좋은 문장들이 가득한 노트. 언젠간 낡고, 바스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최대한 오래 내 품에 두고 싶다. 


필사의 매력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 하루에 딱 10분이어도 상관없다. 좋아하는 문장을 나의 손으로 노트에 옮겨보자. 도구의 제한도 없다. 연필, 볼펜, 수성펜, 만년필 무엇이든 괜찮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옮겨보자. 그리고 다시 한번 천천히 들여다보자. 옮겨 담은 문장도, 내 마음도. 



작가의 이전글 결혼식을 끝내고 돌아온 일상의 나날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