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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14. 2024

#2 헤어나올 수 없는 그것 '입덧'

이런 지옥은 처음이었다. 음식을 쳐다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음식도 외면하게 되는 아주 놀라운 경험의 연속. 무엇인가 먹으면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아야 하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 말로만 듣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입덧 지옥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입덧이 심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주변에서 출산까지 마친 언니들이나 지인들 대부분은 입덧으로 크게 고생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 역시 그들처럼 무탈하게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이젠 물만 마셔도 게워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건 새콤달콤. 이걸 먹으면 그나마 속이 좀 진정된다. 하지만 당분이 많아 계속해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 대안으로 매실청을 타 먹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변기로 직행해야 한다. 


6주부터 시작된 입덧은 11주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눈 밑은 퀭해졌고, 볼살도 많이 빠졌다. 예전엔 그렇게 굶고 운동해도 빠지지 않던 얼굴살이 순식간에 빠지고 있다. 


입덧 약도 처방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되려 그걸 먹으면 토하는 수준. 이젠 토하는 것도 지칠 지경이다. 먹는 것도 거의 없는데, 그나마도 미친 듯이 뱉어내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진다. 그럼에도 일은 계속해야 하니,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단축 근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곧 12주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것마저도 종료되니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퀭한 얼굴로 앉아있는 나를 보고 누가 물었다. 

요즘 좀 어떠냐고. 

이렇게 답했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를 떠다니는 배를 저 혼자서 타고 있는 느낌이에요" 


출렁거리는 배 안을 나 혼자 지키고 있는 느낌.

분명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건 땅인데, 어째서 이렇게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일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 홀로 배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외면해 보지만, 

끝내 나의 발걸음은 화장실 속 변기에 닿아있을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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