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옥철에 시달리며, 밥벌이를 하러 간다는 것은.

by 유정세이스트

해가 떠오르는 것이 두려웠다. 매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신은 무심했다. 아무리 싫다고 소리치며 고개를 저어도 어김없이 날은 밝아왔다. 동이 트면 난 출근을 해야만 했다. 밥벌이를 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활비를 벌어들이기 위해 몸을 실어야만 하는 2호선 지하철이 너무 싫었을 뿐이었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계약한 집은 신대방역과 인접해 있었다. 당시 회사가 위치하고 있었던 남부터미널까지 가기 위해서는 신대방역으로 걸어가 2호선을 타야만 했다. 언젠가 뉴스에서 적자투성이 서울 지하철에서 유일한 흑자 노선이 2호선 신도림~강남 구간이라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하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녁 9시만 되면 시내버스가 모두 끊기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던 터라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뉴스 보도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관련 내용을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상황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하자, 너무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출근길 2호선 신도림~강남 구간을 이용해 본 적이 있는가? 살아있는 지옥이 따로 없다. 최악보다 더 최악이다. 출근 시간에 쫓기는 이들이 마치 좀비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와 잽싸게 지하철에 올라타는 것을 보면 마치 2016년 여름에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작 ‘부산행’을 보는 것만 같다.

분명히 지하철은 초만원 상태다. 단 한 곳도 발 디딜 곳이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빈공간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는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한다. 뾰족한 팔꿈치를 무기로 입구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쪽으로 강하게 밀며 설 곳을 마련한다.

그렇게 문이 닫히면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힌다. 겨우 158cm에 불과한 나는 앞사람과 뒷사람, 그리고 양옆의 사람에 끼여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심할 때는 구토감이 밀려오는 경우가 있다. 더더욱 심할 때는 곧 압사당할 것만 같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 회사고 뭐고 때려치우고 이놈의 지하철 좀 안 타고 싶다는 생각을 과장 조금 보태서 3만 번은 했다.


어느 날에는 앞에 서 있던 여자의 족히 7cm는 되어 보이는 하이힐에 발을 밟혀서 비명을 내지른 적도 있다. 얼마나 아팠는지 눈물까지 핑 돌았다. 아프기도 하고 열이 받기도 해서 앞의 여자에게 따졌더니 그녀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머, 죄송합니다’하고 후다닥 다음 역에서 하차하고야 말았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겨우 출근했던 기억이 있다.


출근 시간이 임박해 가는 2호선 지옥철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도 결코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마음이 급한 이들은 인정사정 없이 그들을 밀치기 일쑤였고, 젊은이들의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한 그들은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는 했다.


‘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어르신께 당장이라도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의 현 위치는 사방으로 빈틈없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2호선 지옥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난 한껏 몸이 구겨진 채로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누군가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기를.

워낙 사람이 많은 탓에 산소가 부족해 숨까지 가빠지는 지옥철 2호선. 생지옥인 이곳도 잠시 텅 비어버리는 시간이 있다. 4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사당역에 도착할 때다. 열차가 사당역에 근접하고 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내부의 공기가 달라진다.


서둘러 내릴 준비를 하느라 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염려되는 것인지, 다들 주섬주섬 핸드폰이나 지갑과 같은 작은 소지품을 가방에 넣는다. 빠르게 환승하기 위해서 가방을 고쳐매는 이들도 있다.


이윽고 열차가 사당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면 마치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 마냥 다들 전력 질주를 시작한다. 놀라운 속도로 앞다투어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람들이 모두 지하철에서 내리고 사당역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열차에 오르는 그 찰나의 순간, 난 비로소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다. 갑자기 넓어진 공간, 풍부해진 산소의 양.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다 보면 압사할 것만 같은 공포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이어 내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열차에 올라탄다. 특히 사당역에서 강남역까지의 구간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그럴 때면 다시금 난 ‘이렇게까지 몸이 구겨진 상태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으며 출근을 해야 되는 것일까. 다시 경주로 내려가서 다른 일을 찾아볼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볼까’라는 생각에 잠긴다.


이 끔찍한 생활을 무려 2년 동안 반복했다. 결국 난 지쳤다. 회사 일보다 더 스트레스 받았던 건 지옥철에 내 몸을 싣는 것이었으니까.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이제 더는 만원 지하철에 고통받지 않아도 되니까.


퇴사 후, 한동안 경주에 내려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와 산책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지금 나의 글쓰기의 원천은 그때 하염없이 읽어내렸던 책일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질리도록 읽었다. 많게는 하루에 3권씩.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을 때, 난 곧장 짐을 쌌다. 서울로 올라와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딱 한 가지 조건을 세웠다.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걸어서 오고 다닐 수 있는 회사일 것. 다행히 난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을 성공했고 매일 아침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어서 밥벌이를 하러 간다.


이제 더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지하철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되어 좋다. 아침부터 한껏 인상을 쓰며, 사무실 문을 열지 않아도 되어 기쁘다.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며, 최상의 컨디션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지만, 내게는 예외였으면 좋겠다. 지금이 이 소중한 시간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으니까. 있는 힘껏 꽉 잡아두고 싶으니까.

※ 본 글은 지난 8월에 업로드한 '2호선 타다가 사람 잡겠네, 잡겠어'의 확장판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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