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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Oct 18. 2021

동생이 언니처럼 느껴지는 순간

밤 11시, 난 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위경련이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다고 생각했던 위가 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내 위를 부여잡고 심각한 압력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극한의 통증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통증이 나를 잠식했다. 

나의 신음 소리에 옆에서 곤히 자던 여동생이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나를 보고 동생은 깜짝 놀란듯 보였다. 난 급한 대로 겔포스라도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겔포스 1개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내 위장 속으로 부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팠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겔포스를 많이 복용하면 분명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위가 쥐어짜는 바람에 방법이 없었다. 동생이 건넨 겔포스 하나를 더 먹었다. 애석하게도 2번째 겔포스도 내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급해진 동생은 약이 담긴 서랍을 한참 뒤져 위 진정제를 찾아내었다. 물 마실 힘도 없다는 내게 꼭 붙어서 직접 약을 먹여주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근처 응급실을 알아봤다. 다행히 우리 집은 세브란스병원 응급실과 가까웠다.

응급실로 가려고 결심한 순간,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할 정도로 심한 통증. 동생은 일단 이거라도 먹자며 타이레놀을 가져와 내 입에 털어 넣었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서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럴 힘도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병색이 짙어진 나를 동생은 한참을 쓰다듬어줬다. 마치 엄마처럼, 언니처럼. 따뜻한 손으로 명치를 어루만져 주고, 혹시나 체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며 등을 계속해서 만지고 두드려 주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본인도 내일 새벽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도, 언니 걱정 뿐이었다.  계속해서 나를 만져주고, 한 손으로는 병원을 알아봤다. 

참 신기하게도, 아무리 갖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통증이 동생의 따뜻한 어루만짐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가쁜 숨을 몰아쉬지도 않았고, 혼자 일어나서 앉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도 동생은 팔이 아플텐데도 끝까지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자신의 손의 온기를 내 배로 전해주었다. 덕분에 난 통증을 잊고, 잠들 수 있었다. 


늘 내가 훨씬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23살이지만 여전히 내 동생은 아직 아이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젯 밤에는 달랐다. 동생이 나의 보호자처럼 여겨졌다. 엄마 대신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엄마보다 더 따뜻한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 주는데, 내가 그동안 동생을 너무 어리게만 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이라고, 어리다고 생각해 언니로서 그동안 잔소리를 참 많이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본인이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대답하여 '너 아직 어린데, 어떻게 혼자 알아서 한다는 거야.'라고 잔소리도 많이 했었는데. 이젠 이런 잔소리를 멈출 때가 된 것 같다. 


내 동생 다 컸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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