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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Oct 20. 2021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오전 7시, 우렁차게 울리는 알람을 간신히 끄며 아침을 맞이한다. 아무리 바쁜 날에도 꼭 5분은 매트리스에 앉아 스트레칭을 한다. 밤새 한껏 굳어버린 몸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다리가 많이 부었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추가로 5분을 더 투자해 마사지를 한다. 


온 몸을 휘감은 나른한 기분.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한숨 푹 자고 싶지만, 애써 눈길을 거두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샴푸부터 린스, 바디워시까지 골고루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바싹 마른 수건으로 털고 나오면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한다.

심사숙고 끝에 나의 간택을 받은 각종 메이크업 제품들로 공들여 변신을 시작한다.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얼굴이라도 밝아보였으면 좋겠기에 하이라이터를 평소보다 많이 사용한다. 하고 안 하고 확연한 차이가 있다. 수십 개가 넘는 립스턱 더미 속에서 마음에 드는 컬러를 골라 입술에 바른다. 


그런 다음, 머리를 말린다. 드라이기의 바람을 싫어하지만, 바쁜 출근 시간대에는 도저히 자연 바람만으로는흩날리는 머리를 말릴 수가 없다. 뜨거운 바람을 무자비하게 뿜어내는 드라기이와 10분간 사투를 벌이고 나면, 어느덧 물기가 사라진다. 이미 많이 상해버린 비루한 머리카락이지만,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에센스와 보호제를 적당히 손에 덜어 발라준다. 

영양 충전을 마친 머리카락은 280도에 달하는 고온의 고데기를 만나게 된다. 고데기는 머리를 상하게 만드는 주범이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 악성 곱슬이니까. 고데기로 곱슬을 일일이 펴지 않으면, 출근을 할 수가 없으니까. 한 마리 표효하는 사자의 갈퀴를 회사 사람에게 드러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고데기 작업이 끝나면 악세사리함이 있는 선반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가의 악세사리부터 저렴한 것까지 모두 들어있는 그곳에서 한참을 서서 오늘의 아이템을 매의 눈으로 선별한다. 옷과 악세사리가 잘 어울리는지 최종 확인을 한 후, 집을 나선다. 

회사까지는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기에는 빙 돌아가고,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애매한 거리라서 가급적이면 걸어다닌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구경할 것들이 많다. 특히 카페가 즐비한데, 스타벅스, 커피빈, 개인 카페들까지 없는 것이 없다. 


난 짐을 한가득 넣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속하여 시계를 확인하며 회사에 가기 바쁜다. 그런데 시선 곳곳에 널려 있는 카페 안의 사람들은 세상 여유롭기만 하다. 따뜻한 커피로 속을 달래며,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있다.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난 그럴 수가 없다. 내 발걸음의 끝에는 회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출근과 동시에 사무실 책상 옆에 일렬로 세워둔 텀블러를 바라본다. 고운 자태를 뽐내는 나의 사랑스러운 텀블러들 중, 오늘의 메이트를 고른다. 탕비실로 달려가, 깨끗하게 세척을 하고 오늘의 에너지 음료인 따뜻한 차를 한가득 담는다. 


켜켜이 쌓인 오전 업무를 하나하나씩 해치워 나가며, 홀짝 홀짝 텀블러 속 뜨거운 그것을 삼킨다. 무거웠던 텀블러가 가벼워 갈 때쯤 시계를 보면 거의 정확하게 12시 30분,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시간이 찾아왔다. 어젯밤 졸린 눈을 비비며 삶은 달걀과 연두부 혹은 고구마와 같은 다이어트 음식을 책상 위에 주섬주섬 꺼낸다. 언제 봐도 즐거운 동료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며, 점심 시간을 즐기고 나면 오후 업무 시간이 성큼 다가와있다. 

오후 근무는 잠과의 싸움이다. 미친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나를 눌러대는 졸음 탓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미칠 것 같은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탕비실 냉동고 속 잠자고 있던 얼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오전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로운 음료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소중한 텀블러를 휘리릭 씻어 얼음을 한가득 담고 달달한 음료를 충전한다. 그럼 더이상 졸음과 사투를 벌이지 않고 똘망똘망한 눈, 한껏 맑아진 정신으로 퇴근을 맞이할 수 있다.

매일이 비슷한 삶이다. 사소한 것의 연속이다.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다. 누군가 탐낼 만큼 대단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순간순간들로 이뤄진 나의 하루가 좋다. 싫지 않다. 혹여 천만 분의 일의 확률로 누군가 나의 순간들을 탐내며, 막대한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도 바꾸고 싶지 않다. 나의 소중한 하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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