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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Nov 04. 2021

왜 하필 우리집이어야만 했니?

나의 스윗한 자취방의 불청객, 곱등이.

이틀 동안 거의 잠을 못 잤다. 하루에 최소 6시간은 푹 자야 에너지가 도는 타입인데, 덕분에 힘이 하나도 없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예민해졌다. 이 모든 것은 이틀 전, 감히 내 자취방을 침입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 '곱등이' 때문이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후에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책을 읽으려 책꽂이쪽으로 가는데 무엇인가 펄쩍 뛰는 것이 보였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잘못 본건가 하고 눈을 크게 떴는데, 세상에나... 정체 불명의 곤충이 날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생긴 것이 딱 '곱등이'였다. 대표적인 혐오 벌레로 꼽히는 바로 그 곱등이 말이다.

난 유난히 벌레를 싫어한다. 뭐, 세상에 벌레를 좋아라 하는 사람음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그중에서도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벌레를 싫어한다. 모기 한 마리만 들어와도 벌벌 떨고, 창틀에 작은 거미라도 보이면 곧바로 문을 닫고 일주일간 창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초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런 나에게 개미도 아니고 ...라니....! 나와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높이뛰기 선수마냥 폴짝 폴짝 신나게 뛰어대는 곱등이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쥐고 있던 극세사 이불을 던졌다. 이불 속에서 곱등이가 몸부림 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10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울음까지 터트리며 급한대로 카드랑 핸드폰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 신발을 제대로 신을 정신도 없어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변변한 옷가지도 걸치지 않은채 황급하게 집을 나섰다.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급히 카톡을 보냈다. 그녀는  11시에나 집에 도착한다고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밖에서 본인을 기다리라고 했다. 이미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마땅히  곳이 없어 동생이 오는 지하철역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까. 얇은 코트에 남색 슬리퍼를 신고, 놀라서 울었던 탓에 아이라인이 번져버린 여성이 야심한 시각에 지하철역 한구석에 앉아있으니. 아마 술이 잔뜩 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11시가 되자, 멀리서 여동생이 보였다. 초라한 행색의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동생은, 이러고 집을 나왔냐면서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봤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 동생에게 너는 곱등이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생은 "나도 당연히 무섭지. 근데 언니가 너무 무서워 해서 지금 내가 무서워 하면  될것 같아."라고 답했다.

언니를 위해 용기를  동생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곱등이를 덮어놓았다는 이불을 인정사정없이 밟았다. 이제는 죽었겠지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불을 펼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곱등이는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모든 짐을 들춰내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까 내가 집에서 나올 , 따라 나온 것인가 싶어 안심하고 빨래 건조대로 가서 수건을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뭔가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이런 곱등이였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동생은 미친듯이 날뛰는 곱등이를 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우린 곱등이가 그렇게 엄청난 달리기 선수일지는 몰랐다. 어찌나 빠르던지 우리의 전기모기채를 피해 잽싸게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우린 결국 그날밤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동생은 다음날 이른 아침 노량진으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고,  역시 출근을 해야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린 잠들 수가 없었다. 거의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곱등이를 찾아 헤맸는데도  녀석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인보다  퀭한  모습을 보고, 동생은 본인이 학원에 가지 않고 곱등이를 잡아보겠다고 했으나, 어떻게 그러냐며 어서 가라고 했다.

나도 겨우겨우 출근을 했으나,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방역 업체에 연락도 해봤으나, 당일은 불가능하다며 거절을 당했다. 오늘은 진짜 어디 숙소를 예약해서 자야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함께 회사에 다니는 동료분께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하게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우리 집에 가서 곱등이를 퇴치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다행히 우리 집은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1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점심시간이 되자 후다닥 배를 채우고 곧장 우리 집으로 갔다. 흡사 방역 버스터즈처럼 나트릴 장갑과 에프킬라로 무장한 우리들은 비장한 각오로 자취방의 문을 열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모두가 땀을 흘리며  안을 뒤졌으나, 우리 영민하신 곱등 선생께서는 고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좌절했고, 직원들도 함께 슬퍼했다.

최후의 방법으로  보일러를 켰다. 블로그와 각종 커뮤니티에 검색을 해보나, 곱등이는 습한 곳을 좋아하고 열에 취약하다고 했다. 따라서 집을 반나절 비운다고 생각하고, 보일러를 강하게 틀어두면 박멸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틀 밤을 꼴딱 새게 만든 위대하신 곱등 선생을 태워죽일 요량으로 보일러를 35도로 맞추고 가동시켰다. 그리고 그날, 퇴근을 하고도 한참을 스타벅스에서 버티다가 동생이 귀가하는  11시에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여니 집안은  그대로 찜통이었다. 찜질방  이상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혹시나 곱등 선생님께서 배를 뒤집고 거품을 물며 죽어있지는 않을까 살펴봤지만...역시나 더듬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급한대로 창문을 활짝 열고 에어컨 온도를 18도에 맞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우리 자매는  12시에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집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1시였다. 다행히 열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몰라  2시간 가까이를 곱등이 시체라도 찾아보겠다고  집안을 뒤적였으나... 역시나 실패였고 하루밤을  새었다가는 정말 죽을것 같아서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딱 2시간을 잤는데, 꿈에서 내 배 위에서 곱등이 열마리가 펄쩍 펄쩍 뛰는 것이 아닌가. 꿈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소름이 끼쳤고 일어나 보니 배게가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곱등이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다 무슨 일인 것일까. 이러다 나 정말 죽겠다,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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