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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Nov 10. 2021

자취가 이렇게나 돈이 많이 드는 줄 알았더라면.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백만 원은 그냥 나가네?

“넌 그래서 언제 서울에 집 살래?”     


매일 무언가를 사들이는 소비 요정인 큰딸을 보면 엄마는 매번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그렇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펑펑 돈을 쓰면 도대체 언제쯤 서울에 집을 사겠냐는 것이다. 나도 안다. 이렇게 홀린 듯 카드를 긁고 다니면, 소비를 찬양한다면, 난 절대로 영원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아직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먼저 자취를 시작한 친구들이 입이 닳도록 말했다.


 “유정아, 자취를 시작하면 말이야. 진짜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백만 원은 그냥 나간다?” 당시, 친구들은 철없는 엄마 껌딱지인 내게 숱하게 자취 생활의 현실에 대한 조언을 건넸지만, 미안하게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저 그저 그냥 하는 소리이겠거니, 괜히 저러는 거겠지라고 치부했다. 
 

 하, 그런데 친구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사실상 인생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니 진짜 숨만 쉬어도 백만 원이 증발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한 달에 70만 원에 달하는 월세를 지원해 주셨지만, 그 외에도 나의 월급을 앗아가는 존재들은 숱하게 많았다.      


내가 단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꾸역꾸역 찾아오는 각종 고지서. 수도세와 전기세, 가스 요금을 합치면 한 달에 1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휴지, 생수, 샴푸, 린스, 생리대 등의 생필품은 어쩜 그렇게 빨리도 떨어지는 것일까. 얼마나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으면 난 정말이지 우리 집에 동생과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사는 것인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끄럽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전혀 몰랐다. 항상 화장실에는 휴지가 그득하게 채워져 있었고, 샴푸나 린스도 떨어져 바닥을 드러낼 때가 되면 감쪽같이 교체되어 있었으니까. 언젠가 아빠가 저렴한 휴지를 고르길래, ‘왜 좋은 휴지를 놔두고 저런 것을 선택할까’ 스치듯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30롤을 사도 한 달을 쓰기가 힘드니 아무래도 비싼 제품보다는 저렴한 것으로 고르셨을 것이다.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서야 아빠의 마음이, 행동이 더없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자취를 시작하며 가장 지출 비중이 큰 것은 바로 ‘식비’다. 아낀다고 아끼는데, 식비 조절이 쉽지가 않다. 엄마와 달리 요리를 잘하지 못하기에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을 시킬 때가 많은데 이러면 또 족히 4~50만 원은 순식간에 증발된다. 지출이 만만치 않길래 위기를 직감하고 집밥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내가 한 음식들은 하나같이 죄다 맛이 없었다.      


마트에서 호박, 양파, 감자, 두부를 사서 된장찌개를 끓인 적이 있었다. 내 나름 멸치 육수까지 내어가며 정성을 다했기에 자신이 있었다. 함께 사는 내 동생이 한 입 먹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착한 동생은 애써 맛있다고 해줬지만 직접 만든 내가 먹어봐도 맛이 형편없었다.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는 모든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구수한 맛이 났다면, 내 것은 재료 하나하나가 모두 다 따로 놀았고 간도 맞지 않았다. 진짜 일주일 동안 굶어 허기질 대로 허기진 사람이 아니라면 못 먹을 정도랄까. 
 
 그 뒤로 갖가지 집밥을 시도했지만 다 별로였다. 그나마 버터를 가득 넣어 풍미를 살린 김치볶음밥은 먹을만했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솜씨라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외할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장 김치가 워낙 맛있어서 그럴듯한 맛이 나는 것이었으니까. 
 
 결국 한동안 나는 요리와 담을 쌓고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비 습관을 대대적으로 점검해 보니 외식, 배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목도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른이 되어도 수중에 쥐고 있는 돈이 하나도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물론 나름대로 청약 저축, 적금을 부으며 모으고는 있지만 돈이야 모으면 모을수록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책이 필요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다시 집밥을 하기로 결심했다. 자취생들의 구원자, 백종원의 요리비책 유튜브 채널을 보며 갖가지 요리들을 시도했다. 여전히 별로 맛은 없지만, 그래도 맛소금으로 간을 맞추니 그럭저럭 먹어줄만했다. 집에서 음식을 하니 자연스레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키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식대가 확 줄어들었다. 이렇게 줄어든 비용은 혹시나 스트레스 비용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따로 통장에 모아두고 있다. 
 
집밥 라이프를 시작하며 식비도 확연하게 줄어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카페 가는 횟수도 줄였지만 여전히 나가는 비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머리가 긴 여성 둘이 사니 샴푸, 린스도 사놓으면 금방 동이 나고 또 개인적으로 출판 준비를 하면서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적금과 청약저축, 비상금 통장으로 돈이 빠져 나가고 생활비까지 사용하면 정작 나를 위해 투자할 돈은 넉넉지 않은 삶이 지속되니,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이렇게 돈이 많이 들 줄 알았으면 자취하지 말 것을”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하, 아니다. 
얼른 커리어를 더 개발해서 

연봉이나 더 올려야겠다.
 
그럼, 내게 투자할 돈이 
더더욱 많아지겠지.
 

빠른 시일 내에 자금을 모아 
간신히 구청에 신고만 해둔 

나의 1인 출판사의 규모를 키우고 싶다.
내 책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책도
서슴없이 내어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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