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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02. 2021

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순간.

매주 토요일 아침, 난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대청소를 하는 날이니까. 


이른 아침 눈을 뜨면 곧장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다. 졸음을 쫓기 위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말이다.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곧장 왁스를 집어 든다. 곳곳에 보이는 물때에 왁스를 뿌리고 청소용 솔로 있는 힘껏 문지른다. 줄눈 사이도 꼼꼼하게 닦아주면 여느 7성급 호텔 부럽지 않을 정도로 쾌적한 화장실로 변모한다. 


화장실 청소가 끝나면 이제는 주방 차례다. 밀린 설거지들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인덕션도 전용 약품을 헝겊에 묻혀 깨끗하게 닦아낸다.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내친김에 냉장고 청소도 한다. 내부 곳곳을 샅샅이 살펴, 남은 음식물들을 버리고 혹시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없는지 재차 확인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무릎을 구부려 걸레질을 하고 나면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러한 행동이 무릎 관절염을 유발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계속 무릎이 시큰거리면 잠시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통증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대청소가 끝나면 주중에 미처 하지 못했던 책 읽기를 시작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무려 700페이지에 달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이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봤던 인물이었다. 회고록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영문판이라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번역본이 나왔길래 잽싸게 구입했다. 


3만 원이 넘을 정도로 고가였지만, 벽돌보다 더 무거웠지만, 모조리 다 읽는 데 족히 한 달은 넘게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평일에는 원고 작업 및 회사 업무로 바빠 손도 대지 못하지만, 토요일이면 50페이지라도 읽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책을 읽고 나면 대충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시작한다. 고요한 동네를 거닐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된다. 머리가 한층 맑아졌다는 느낌이 들면 자주 가는 단골 마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유, 달걀, 라면 등 자취생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골라담는다. 어느새 한 손으로 들기에 벅찰 정도로 무거워진 바구니를 들고 계산을 하고 나면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 있다. 집으로 돌아가 사 온 재료들로 저녁을 먹고, 이불 속에 온몸을 파묻으면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나의 토요일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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