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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07. 2021

활자에 취해 있는 삶에 대하여

어느 '활자 중독자'의 이야기

“너, 활자 중독자야.”
 
하루라도 책을 꺼내어 읽지 않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나. 

이런 나를 보고 친구는 말했다. 활자 중독자라고. 그것도 아주 심각한. 
 
친구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난 웃으며 답했다. 마약 중독자보다는 활자 중독자가 낫지 않냐고. 
 
활자에 중독되어 버리면서 확실히 글 쓰는 일이 수월해졌다. 다양한 표현을 익히게 되었고, 문장을 매끄럽게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유수의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쓴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며 글을 다듬는 기술도 한결 나아졌다. 확실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것도 있는 반면, 잃는 것도 생겨났다. 바로 ‘공간’과 ‘돈’이다. 현재 난 8평 남짓한 좁은 원룸에 살고 있다. 원룸치고 꽤나 큰 책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 꽂힌 책들의 양은 실로 방대하다. 날을 잡고 하나하나 세어보니 책장에 꽂힌 것만 해도 거의 100권에 달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서랍장 위에도 족히 스무 권이 넘는 책이, 냉장고 위 선반에도 서른 권이 넘는 책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성인 3명이 누우면 꽉 차는 원룸에 책만 무려 150권이 차지하고 있으니, 생활용품을 넣어둘 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책 일부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눈물을 머금고, 더는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골라냈다. 다 고르고 보니 약 60권 정도가 되었다. 캐리어에 책을 한가득 넣고, 큰 백팩에도 욱여넣고 강남역 알라딘으로 가서 모두 팔아버렸다. 아끼던 책들이 천 원 정도의 헐값에 팔리니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쩌겠는가. 더 이상 집에 둘 곳이 없는 것을. 내 손을 떠나 좋은 주인을 만나길 기원하며 작별을 고했다. 
 
 60권이 넘는 책을 떠나보냈지만, 책장은 여전히 에세이, 시집, 소설책으로 빽빽하다. 아직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가끔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앞으로 쓰러져 내가 저 밑에 깔려서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이제 돈 이야기를 해볼까. 활자 중독자인 나는 일주일에 2번 이상 강남역 교보문고 혹은 yes24를 통해 책을 구입한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거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겨울 서점’에서 김겨울 작가가 소개한 책을 자주 사는 편이다. 이렇게 매주 하나둘씩 사 모으다 보면 매달 카드 고지서를 받을 때, 책값만 15만 원이 나온다. 누군가는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게는 꽤나 큰돈이다. 타지 살이를 하며, 각종 부식비며 생활비며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오직 도서구입비로만 저만큼의 금액이 나오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을 찾았다. 바로 전자책을 읽는 것. 크레마사운드업이라는 전자책 리더기를 구입했고, 한 달에 5,500원에 불과한 yes24 북클럽에 가입했다. 처음 세 달은 신나게 책을 다운로드 받아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종이책의 넘기는 맛이 그립기 시작했고 결국 다시 오프라인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종이책은 종이책대로, 전자책은 전자책대로, 모조리 읽는 바람에 되려 책값이 더 증가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으면 되지만, 내가 주로 읽는 책은 대부분 신간이라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막막하다. 
 
돈 걱정을 하면서,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오늘도 난 퇴근 후, 서점에 들를 예정이다. 김하나 작가와 함께 살며,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많은 글을 써 내려간 황선우 작가의 신간을 사기 위해서다. 뻔하다. 황 작가의 책을 사러 갔다가 아마 또 다른 신간 에세이들도 한가득 집으로 모셔오겠지. 그럼 또 이번 달 카드값에서 도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겠지. 악순환의 연속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활자 중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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