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Dec 29. 2021

좋은 언니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공시생 동생을 둔 어느 언니의 이야기

취업난이 절정에 달한 이 시기. 동생은 9급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겠노라 선포했다. 휴학을 하고 공부를 하겠다는 그녀의 열정에 우리 가족은 큰 지지를 보내주었다. 동생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학원 비용 및 용돈 등의 금전적인 지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뒷바라지는 모두 내 차지였다. 나와 동생은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동생이 학원을 다니고 처음 2주 동안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난 정말 라면 하나도 겨우 끓이는, 사과도 깎을 줄 모르는 요리 바보지만 동생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해줄 수 있는 것은 새우볶음밥, 김치볶음밥, 유부초밥, 주먹밥, 과일 약간이 전부였다. 매번 도시락을 싸면서 속상했지만, 더 해줄 수 없음에 미안했지만, 그래도 도시락 통을 싹싹 비워오는 동생을 보면 너무 고마우면서 한편으로 짠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 아빠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노력하고 싶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본인의 꿈을 향해 달려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이 기간 동안은 엄마, 아빠 대신 언니인 내가 부모 역할을 대신하고 싶다.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새벽, 힘겹게 몸을 일으켜 학원으로 가는 동생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여유가 있을 때면 간식이라도 챙겨주지만, 그걸 먹을 시간도 없어 동생은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밤 11시가 가까워져야 집으로 돌아오는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자지 않고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뿐. 그마저도 독립출판 준비로 너무 피곤하여 못해줄 때도 많다. 왜 그게 그렇게 마음이 쓰이는 건지.

어제는 용산역 근처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노량진에 들러서 동생을 기다렸다. 학원 문밖으로 나오는 공시생들을 보니 다들 지쳐있었다. 하나같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깨를 툭 떨어트리고 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동생이 보였다. 다행히 표정이 밝았다. 내가 데리러 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하루 종일 학원과 자습실에 틀어 박혀 공부만 했을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11시가 넘으면 어디 들어가서 뭘 먹을 수도 없다. 하는 수없이 편의점에서 이런저런 간식거리들을 사서 동생과 함께 돌아왔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물었다. 

"소정아, 언니야가 데리러 오니까 좋제?"
"응, 좀 좋네!"


좋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동생임에도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진짜 내가 데리러 온 게 좋긴 좋았나 보다. 나도 회사 생활에 살림에 독립출판 준비에 늘 바쁘지만, 그래도 자주 노량진으로 동생을 데리러 가볼까 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면 엄마, 아빠도 그러셨을 테니까. 

언젠가 동생과 이때를 추억할 날이 오겠지. 
그때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도록 
더욱 최선을 다해 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매일 부지런히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